‘생즉사 사즉생’ 이 말은 춘추 전국시대의 무패신화를 이룬 장군인 ‘오기’가 지은 ‘오자병법’의 ‘필사즉생, 생사즉사’ 이다
우리에게는 임진왜란 당시에 이순신 장군께서 병사들을 독려하면서 ‘살기를 도모하는 사람은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 것이다’고 하여 유명하여 졌다.
최근 우리들은 위기의 상황에 봉착했을 때 기업 혹은 정치인들이 이 말을 인용하며 사람들에게 절박한 상황을 전하는 인용구로 사용 된다.
하지만 이 말이 어찌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일시적인 수단으로만 쓰여진단 말인가?
우리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생즉사 사즉생’ 이라는 비장한 각오로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인생을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 될 지침이 아닌가 싶다.
전쟁터에서 죽기를 두려워해 꼼작을 못하고 총을 쏘는 사람은 너무나 쉽게 적의 과녁이 될 것이 자명하다. 반면에 되려 죽기를 각오하고 적진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며 뛰어가는 사람은 오히려 맞추기가 어려워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움직이는 과녁을 맞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공격이 최고의 방어가 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모든 현안에 대해 이런 각오로 임한 다면 못 할 일이 뭐가 있을까?
최근에 삼성의 이건희 회장에 관한 책을 한 권 읽었다. 그 동안 ‘ 삼성신화’에 관하여 여러가지의 책이 나왔지만 대부분이 삼성의 시스템의 우월함, 고도의 인재관리, 경영자의 높은 식견 등을 들면서 삼성은 그렇게 성공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식의 후견지명(後見之明)을 늘어 놓는데 반하여 여기서는 평범한 인간인 이건희 회장이 평하지 않은 업적을 이룬 원인의 하나로 ‘자기계발에 목숨 건’ 것을 들고 있다.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9시간 혹은 12시간짜리 강의를 죽을 각오로 했던 것이요. 결국은 임직원들에게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그 의식의 근간에 ‘생즉사 사즉생’ 의 심정을 전하려 했던 것이다.
죽을 각오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요, 또 변화하기 위해서 현재의 모습에 안주하지 말고 변화하라는 메시지였을 것이다.
일을 행함에 있어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의 범위에서만 판단한다면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내가 가진 그 경험을 놓는다 해서 내가 죽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다른 풍성함을 얻을 수 있는 지름 길인데 사람들은 내 손에 있는 그 지식과 경험을 더 크고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잠시 미뤄 두는 것이 아니라 빼앗긴다고 생각하니 무슨 발전이 있을 수 있는가?
내 주위의 모든 것이 내가 행복하고 잘 사는 도구로 활용해야 하는 데 오히려 잘살려고 배운 지식이나 경험 때문에 우리가 너무 힘들고 어려워 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울 따름이다.
내 자신이 스폰지가 되어 가감없이 받아들여 내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내 앞에 쳐져 있는 지식, 경험이라는 장막이 걷어지는 것이 선행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고 그 순간 세상 만사 내 눈에 보이고 내가 겪는 모든 것들이 나를 채우는 풍성하고 알찬 재원이 될 것이다.
만사를 나 자신이 성장하기 위해서 부족함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진정한 용기를 가지자.
동시에 내 주변 모든 것에서 배우겠다는 겸손함을 가지자.
그야 말로 하루하루를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로 살아보자.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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