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주도 아닌 ‘시장자율’에 맡겨야
금융전체 리스크 감안, 정부 주도해야 ‘반론’
고위 경제관료들이 대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연일 강성 발언을 내놓고 있어 외환위기 당시 정부주도 구조조정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본지가 25일 국책 연구원장 및 ·민간 전문가 6인에게 정부주도 구조조정에 대해 긴급 설문조사한 결과 이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경제위기 극복을 가속화하고 우리경제의 체질개선을 위해 정부가 주도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는 의견과 구조조정은 시장자율에 맡기고 기업퇴출이 목적이 아닌 기업 살리기가 주가 돼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구조 구조조정 ‘박차’…채권은행 ‘압박’
정부주도 구조조정의 시작은 지난달 30일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옥석(玉石) 가리기를 통해 신속하고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하라고 주문하면서다. 이에 경제관료들이 경쟁적으로 대기업을 압박하는 모습이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2일 한 학술회의에서 “환자의 건강회복을 위해서는 환부를 도려내는 아픔이 필요하듯, 철저한 구조조정으로 이번 위기를 기업 체질개선과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대기업들이 하루빨리 비주력 우량 계열사들을 팔아 재무구조를 개선하라는 촉구다.
정부의 ‘기업구조조정 추진계획’ 계획에 따르면 채권은행들은 5월부터 신용위험 기본평가에서 불합격한 400여개 대기업에 대해 세부평가를 착수, 6월까지 평가를 마무리한다. 금감원에 따르면 평가 대상 기업 1422곳 중 400여곳이 기본평가에 불합격해 주채권은행의 세부평가를 받아야 한다.
또 금융감독원은 오는 7월 채권은행들에 대해 현장 검사를 통해 채권단 평가의 적절성 여부를 직접 확인한다. 45개 주채무계열 대기업 집단 중 현금 유동성이 좋지 못한 10여곳에 대해서는 계열사 매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진행된다.
또 재벌 그룹들에 대한 구조조정도 속도감 있게 추진된다.
주채무계열 기업집단 중 재무구조가 열악한 기업집단은 5월까지 채권은행과 재무개선약정(MOU)를 맺고, 자체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채권단에 따르면 14개 기업집단이 불합격 판정을 받았고 10여개 그룹이 주채권은행과 MOU를 맺는다.
김 금감원장은 “주채권 은행의 대응이 미흡할 경우 (채권은행) 기관장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정부 주도 “맞다” “틀리다” 논쟁중
이처럼 정부는 사실상 구조조정을 주도할 태세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장은 “시장을 중심으로 체질개선 구조조정에 나서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며 “은행 스스로가 자신의 부실채권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금융 전체의 리스크를 껴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 주도하에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이주선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본부장은 “지금의 위기는 지난 외환위기 당시와는 기본적으로 사정이 다르다”며 “정부가 주도하는 일률적인 인수·합병이나 무리한 방책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시장 자율에 맡기면서 자율적 해소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대기업들의 부채비율이 1000%에 달했고 퇴출된 기업들은 2600%에 달했다. 그러나 현재 30대 기업의 부채비율은 200% 이하로 낮아진 만큼 기업의 재정건전성이 양호하기 때문에 정부가 주도 구조조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게 이 본부장의 설명이다.
그는 특히 그는 “정부나 관치가 주도하면 특정한 지표 등을 토대로 무리한 구조조정에 돌입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채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도 “정부가 구조조정을 주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고,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역시 “정부가 주도한다고 되는 상황은 아니지 않느냐. 설사 정부가 주도한다고 해도 어차피 은행이 기업들을 대상으로 돈을 빌려주고 받는 만큼 은행 중심으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감독 통한 상시적 구조조정해야
이같이 정부의 구조조정을 주도하려는 데 대해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주된 이유는 획일적인 잣대로 무리한 조정에 나서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은행권 체질에 맞는 맞춤형 구조조정과 금융감독 강화를 통한 상시적 구조조정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이 본부장은 “우선 금융기관의 부채비율이나 규모에 따른 체구에 맞는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여력이 있는 은행권은 기업 퇴출을 되도록 줄이고 여력이 낮은 기업들은 이번 기회를 삼아 기업 퇴출을 유도하고 대기업의 경우, 기존 주채권은행을 변경하는 등의 자체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업종별로 세밀한 분석을 통한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하며 경제침체기에 일자리 유지를 위해서라도 기업 퇴출을 목표로 하기 보단, 기업을 살리는 방향으로 모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소 경제연구실장은 “금융감독을 통한 상시적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경기가 좋을 때만이 아니라 경기 악화시까지 고려한 재정건전성 유지, 부실기업에 대한 대출 관행 개선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원장도 “경기와 무관하게 이뤄져야 경제력이 건전해질 수 있기 때문에 상시적으로 재정건전성이나 투자 부실 차단을 해나가는 상시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가세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정부가 외환위기 때처럼 주도적으로 총대를 메는 것은 안되기 때문에 채권은행과 기업 스스로 잘 할 수 있도록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다”며 “ 인센티브 및 패널티를 주는 방법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송정훈 기자 songhdd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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