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뵙자고 했는데, 그것이 마지막 인연이었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인간 노무현'의 모습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찬조연설을 맡아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라는 말까지 들은 부산 자갈치시장 이일순(65) 씨.
그는 25일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가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 눈물을 글썽였다.
자갈치 시장에서 아귀를 팔아온 '자갈치 아지매' 이 씨는 지난해 12월 노 전 대통령 내외가 자신과 상인 등을 봉하마을로 초청해 얼굴을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지난 2002년 노 전 대통령의 당선 이후 청와대에 초청을 받은 이후 2번째 공식만남이었던 것.
"당시 아귀 1상자를 갖고 가 잡수시라고 전해줬는데 뒤에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잘 먹었다고 전화가 왔었다. 자주 찾아가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이 씨는 노 전 대통령 생각만 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나서 뉴스를 안보려고 하지만 그래도 시시각각 쏟아져 나오는 김해 봉하마을 소식을 빠지지 않고 챙겨본다고 말했다.
이 씨는 "노 전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끌어안고 가셨으니 앞으로는 정치권에서 싸우지 말고 화합해야 한다"며 "그것이 노 전 대통령이 바라는 바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겸손한 사람"
노 전 대통령의 사저 뒷산 등산길에 위치한 지광사의 스님도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기억했다.
스님은 "(노 전 대통령이) 어릴 때부터 이 절에 왔다. 그런데 문제가 불거진 이후 등산하는 모습을 딱 1번 봤다"며 괴로워했던 노 전 대통령의 심정을 대신 전했다.
그는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새벽에 등산하면서 절에 들렀는데, 그게 마지막 모습일 줄이야…"라고 애통해하며 "그때도 겸손하고 깍듯했다"고 전했다.
지광사에서 청소하는 할머니는 "항상 오실 때마다 나처럼 청소하는 사람에게도 한 명 한 명 악수해줬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다들 서울에서 사는데 노 전 대통령은 고향에 내려와서 고향사람과 같이 살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을주민 박정숙(67) 씨는 어린 시절 노 전 대통령을 활발한 성격의 가슴 따뜻한 사람으로 회상했다.
"명석하고 밝은 성품으로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분이었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이렇게 허무하게 가셨는데, 이젠 아무것도 필요 없게 됐습니다."
◆"학(鶴) 같은 사람"
노 전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신계륜 전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을 이렇게 기억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늘 심각하게 갈등하는 모습 때문"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현재 45일째 전국 도보 순례 중인 그는 전날 서거 소식을 전해들은 뒤 배낭에 꽂은 깃발 상단에 검은 리본을 달았다.
정치권에 입문한 뒤 줄곧 노 전 대통령의 반대편에 섰던 사법시험(17회) 동기 한나라당 진영 의원도 "인간적이고 탈권위적이었다. 그리고 자존심이 강했다"고 회고했다.
진 의원은 "내가 네 살 어렸지만 인간적으로 아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며 "1995년 부산시장 낙선 뒤 단둘이 식사한 일이 있는데 자신의 정치 인생에 대해 '꿈을 꾼 것 같다'고 말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었다"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을 이렇게 회상했다.
1993년 추석 무렵. 92년 총선에 낙선해 원외 최고위원이 된 노 전 대통령은 저녁을 사기 위해 기자10여 명을 모았다.
노 전 대통령은 저녁 자리에서 인생 이야기를 한바탕 풀더니 기자들을 포장마차로 끌고 갔다.
술이 오른 그는 갑자기 허리띠를 풀어 머리에 묶더니 "비얌~비얌~" 하며 뱀 장수 흉내를 내며 노래를 불러 분위기를 돋웠다. 이내 기자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다들 한데 어우러졌다.
김 의원은 "그는 열정과 소탈함, 무모할 정도의 용기는 그가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힘이었다"며 생전 그의 모습을 추억했다.
이보람 기자 bora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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