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기에 기업들은 모험을 두려워한다. 이런 시기에는 최종 의사 결정을 위해 넘어야 할 장애물의 위치도 점점 높아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주저하다간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기 쉽다. 조심스럽지만 과감한 판단이 절실한 이유다.
과감한 판단을 위해서는 뭔가 믿을 게 있어야 한다. 두둑한 현금이나 장기적인 전략, 유망한 사업 모델 등이 그것이다. 기업들은 이를 바탕으로 위기 속에 생존을 모색하고 미래의 성공을 도모한다. 비즈니스위크가 주목한 '모험가'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프록터앤드갬블(P&G)의 새 최고경영자(CEO)로 내정된 로버트 맥도널드 P&G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위기의 양면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경영가로 꼽힌다. 그는 살아남고자 하는 욕구와 번창하고자 하는 욕구가 '위기'라는 한자어에 동시에 녹아있다고 강조한다. 한자어로 위기의 '위'와 기회의 '기'가 가진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P&G, 미래를 위한 공격적 확장
세계적인 생활용품제조업체 P&G는 지난 1분기 7년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경기침체로 씀씀이를 줄인 소비자들이 저가 상품으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투자자들 역시 향후 수개월간 P&G가 고전할 것이라는 전망을 잇따라 내놨다.
하지만 P&G는 움추러들지 않았다. 올해 R&D 예산(23억 달러)을 지난해보다 오히려 4.5% 늘렸다. 또 향후 5년간 세계 곳곳에 19개의 공장을 새로 짓는 계획도 내놨다. 이는 171년 회사 역사상 연간 기준 최대 투자 규모다. 맥도널드 차기 CEO는 "우리는 언제나 투자할 기회와 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있다"며 "지금과 같은 위기가 바로 적기"라고 말했다.
◇메릴린치냐 리먼브라더스냐
지난해 세계 금융위기의 신호탄이 된 미국 투자은행 메릴린치와 리먼브라더스의 붕괴는 세계 금융시장의 재편을 예고했다. 한 때 세계 금융계를 주름잡던 두 은행이 몰락한 만큼 이를 헐값에 사들이면 상당한 이익을 거둘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를 눈치 챈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메릴을 인수했고 바클레이스캐피털은 리먼을 흡수했다. 하지만 결과는 대조적이었다. 미 정부의 압력에 밀려 메릴린치를 통째로 사들인 BoA는 340억 달러의 자본 부족 상황에 빠졌다. 반면 리먼의 주요 자산만 빨아들인 바클레이스는 M&A시장과 회사채 발행시장에서 선전, 업계 순위가 39위에서 4위로 급등했다.
◇피아트·아우디…유럽 車업계의 선전
미국 자동차업계가 풍비박산난 상황에서 선전하고 있는 유럽 자동차업계도 주목할 만하다. 그 중에서도 피아트와 아우디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피아트는 지난주 크라이슬러와의 자산 매각 협상을 마무리하고 '뉴 크라이스러'를 선포했다. 또 폴크스바겐의 고급차 브랜드 아우디는 미국 고급차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미국시장 점유율 늘리기에 주력하고 있는 아시아 자동차업계도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특히 아우디는 미국 경쟁업체들이 판매 부진 속에 광고를 줄이고 있는 사이 광고 예산을 20% 늘렸다. 요한 드 니첸 아우디 북미법인 부사장은 "경쟁사들이 고전하고 있을 때 우리의 메시지는 더 잘 전달된다"며 광고비 증액 이유를 설명했다.
기아자동차가 미국 현지 첫 공장인 조지아주 공장을 내년 1월부터 가동하려는 계획도 전도유망한 모험이라고 비즈니스위크는 소개했다.
이밖에 비즈니스위크는 에탄올기업을 잇따라 인수하고 있는 미국 에너지기업 발레로와 올해 창립 이후 두번째 규모의 '빅딜'을 감행한 미국 완구소매점 토이저러스 등을 위기 속에 모험정신이 돋보이는 기업으로 꼽았다.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