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드 아마디네자드의 대통령 재선에 따른 선거 부정 시비로 촉발된 이란의 대규모 시위가 나라 안팎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란의 시위가 중국 톈안먼 사태와 같은 유혈 참사로 귀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는 보수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개혁파 후보 미르 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의 양강 구도 속에 전개된 대선의 연장전 성격이 짙다. 핵개발 주권을 강조하며 미국과 대립해온 아마디네자드와 경제개혁과 투명한 핵개발 프로그램 운영을 내세운 무사비의 대결은 국내외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지난 13일 대선이 치러진 지 하룻만에 나온 개표 결과는 뜨거웠던 선거 열기를 무색케 했다. 양 후보가 접전을 벌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아마디네자드(62.6%)가 무사비(33.8%)를 '더블 스코어' 차이로 따돌린 것이다.
무사비를 지지하는 세력은 곧장 선거부정 의혹을 제기했고 무사비도 14일 성명을 통해 헌법수호위원회에 대선 결과를 무효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사이 테헤란을 중심으로 모여든 시위 군중은 '독재 타도'를 외치며 세를 불려갔다.
하지만 이란 정부는 시위에 참여한 170명을 체포하고 이슬람이란참여전선(IIPF) 등 개혁파 진영의 지도자 10여명을 불법시위 주도 혐의로 검거하는 등 강경 진압으로 맞섰다.
이란의 시위 사태는 15일 테헤란 아자디 광장에 수십만명, 전국적으로는 200만명이 참여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이날 시위에서는 이란의 준군사조직인 바시지 민병대가 시위대에 총탄을 발사해 7명(앰네스티 집계 15명) 이상이 숨지기도 했다.
헌법수호위원회가 일부 지역 투표함의 재검표를 발표했지만 개혁파 지지세력은 반정부 시위를 이어갔다. 18일에는 민병대의 발포로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어 정부를 압박했다.
시위의 기세가 꺾이지 않자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직접 나섰다. 그는 19일 이례적으로 테헤란 대학에서 금요예배를 직접 주관하며 시위 중단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향후 시위사태가 재발할 경우 응분의 책임을 묻겠다며 개혁파를 압박했다.
하메네이는 설교를 통해 선거부정 의혹을 일축한 뒤 "나의 대내외 정책관이 아마디네자드의 것에 가깝다"며 현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줌으로써 이번 사태의 수습을 시도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과 유엔은 하메네이를 거세게 비난했다.
하메네이의 경고와 이란 정부의 강력 대응 방침에도 불구하고 무사비의 지지자들은 20일에도 산발 시위를 이어갔다.
대선 후보 중 한 명이었던 메흐디 카루비 전 의회 의장은 이날 시위를 취소하겠다고 밝혔지만 무사비는 헌법수호위원회에 대선 결과의 무효화를 거듭 촉구했다. 또 지지자들에 대한 연설에서 자신은 순교자의 길을 갈 준비가 됐다고 밝히며 하메네이 체제에 대립각을 세웠다.
이란 당국이 무사비를 전격적으로 체포할 수 있다는 소문이 떠도는 가운데, 무사비는 지지자들에게 자신이 체포되면 전국적 규모의 총파업을 벌여달라고 주문하고 나섰다.
그는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우리는 이슬람 체제와 그 법에 반대하지 않으나 거짓과 일탈에 맞서 싸워 개혁하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란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자 시위대 사이에 단문 메시지 송수신 서비스인 '트위터'가 유용한 소통 수단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카세트테이프 혁명'으로 불린 1979년 이란혁명이 '엄지혁명'으로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란 시위대들은 "오늘 오후 4시, 카루비 및 무사비와 조용한 항의집회", "주목. 무사비의 시위 참여는 오후 5시까지 계속됨" 등의 트위터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
1979년 이란혁명 당시 프랑스 파리에 망명해 있던 하메네이가 자신의 연설을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혁명 메시지를 전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이 테이프는 이란 내 성직자들에 의해 대량 복제돼 이란 전역으로 퍼졌으며 이란 혁명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이란 시위대는 트위터를 비롯해 인맥 구축 사이트 '페이스북', 사진 공유 사이트 '플리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 등을 이용해 시위 현장 사진과 동영상을 퍼 나르고 있다.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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