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선과 악의 갈등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09-07-29 13:56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말초적인 시각적 즐거움이나 호기심 때문인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한 취향을 하나하나 지적할 순 없지만, 적어도 호러물이 분명 장르 영화의 큰 기둥임을 인정한다면, 그저 그렇게 가볍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호러 영화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평범하게 살아가는 현실 아래 감춰져 있는 불안감을 흔들어 깨워 공포에 찬 진실을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다. 

매년 여름마다 새로운 공포를 선사하는 호러 영화는 단순히 여름 단골손님으로 치부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 저력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의 호러 영화가 존재한다. 공포스러운 느낌보다는 다소 역겨운 장면들 속에서 코믹한 요소를 곁들인 스플래터 무비(Splatter Moive), 얼굴을 가린 살인마가 영화 속 등장인물을 무차별 죽음으로 이끄는 슬래셔 무비(Slasher Moive), 초자연적이거나 종교적 내용 등을 소재로 한 오컬트영화(Occult Moive), 호러 영화들 중에서도 그 잔인함의 정도가 진한 하드고어 영화 (Hard-gore Movie) 등이 그 대표로 꼽힌다. 이외에도 스너프, 카니발리즘, 크리처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현재 호러 영화는 여러 종류를 결합시켜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는 시도를 함으로써 그 영역을 점차 넓히고 있다.

그 중 가장 전통적이며 보편적인 스플래터, 슬래셔, 오컬트 장르의 대표작들에 대해 3회에 걸쳐 분석해 본다.

1. 스플래터 무비(Splatter Movie)
2. 슬래셔 무비(Slasher Movie)
3. 오컬트 무비(Occult Movie)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악마의 씨.
호러영화의 한 흐름을 차지하는 오컬트 영화(Occult movie·이하 오컬트)는 종교와 연관이 있는 영화들이 많은 편이다. 흔히 심령영화라고도 하는 오컬트는 초자연적인 사건이나 악령, 악마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신비스러운’ 혹은 ‘초자연적인’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그 대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오컬트는 주로 악마에 대비되는 순백의 종교적 이미지(교회, 성당, 신부, 목사 등)를 배치한다. 이로써 선과 악의 갈등을 만들어내고, 결말에서 선의 무기력함을 통해 공포를 극대화하는 경우가 많다.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가 연출한 ‘악마의 씨(Rosemary’s Baby, 1968)’는 오컬트의 효시가 된 작품이다.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여인이 악마의 자식을 출산하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렸다. 이전의 호러 영화들이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을 거주지와는 먼 외딴 곳으로 설정하여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안도감을 주었던 반면 이 작품은 현대 도시의 아파트를 사건의 진원지로 설정, 관객들의 공포감을 더했다.

악마의 씨가 흥행 성공을 거두고 난 다음해, 이 작품의 내용 못지않은 비극이 현실에서 이어졌다. 로만 폴란스키의 아내 샤론 테이트(Sharon Marie Tate)가 만삭의 상태에서 광신도들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항간에는 광신도들이 이 작품을 보고 범죄의 힌트를 얻었을 것이라는 논란과 함께 악마의 저주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하지만, 사이비 종교 교주인 찰스 맨슨이 음반제작자를 죽이려 한 과정에서 그 음반 제작자의 집을 빌렸던 로만 폴란스키의 부인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윌리엄 프리드킨(William Friedkin)의 ‘엑소시스트(Exorcist, 1973)’는 오컬트가 호러의 한 장르로서 정착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엑소시스트.


‘윌리엄 피터 블래티(William Peter Blatty)’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엑소시스트는 어린 소녀의 몸에 깃든 악령과 신부와의 대결을 그린 작품으로 호러 영화 부분의 흥행 기록 2위를 달성하면서 개봉 당시 1억 65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1위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로 2억 6000만 달러.)
 
이 작품이 개봉했을 당시 미국의 대부분의 종교단체들은 영화가 긍정적인 내용과 결말을 담고 있다며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메린 신부(막스 본 시도우 분)’가 내쉬는 숨결에 악마의 형상이 보인다고 주장하며 ‘악마의 영화’라고 심각하게 비난했다.

관객 중 일부는 충격적인 화면에 졸도하거나 구토 증세를 일으켰으며, 정신병을 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은 사람까지 생겨났다. 이로 인해 극장 앞에는 항시 구급차가 대기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또한 영화 촬영 기간 중 배우와 스태프 등 관련자 9명이 연이어 사망하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영국과 독일에서는 영화를 본 청소년들이 자살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독일에서는 19살의 소년이 영화를 본 뒤 총으로 자살했다. 영국에서도 간질 환자였던 16살 소년이 자살하기 전에 영화를 봤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됐다.

1974년에는 9살 소녀를 살해한 10대 소년이 법정에서 “이건 내가 아닌 내 안의 누군가가 저지른 짓이다”며 “엑소시스트를 본 뒤 내 안에 그것이 들어왔다”고 증언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리차드 도너 감독의 오멘.
3년 뒤 개봉된 리차드 도너(Richard Donner)의 오멘(Omen, 1976)도 흥행 성공을 거두며 이후 몇 년 동안 오컬트 영화 붐을 이끌어 나갔다.

가장 안전해야할 가정 속에서 악마의 아들인 ‘데미안’(하비 스티븐스 분)으로 인하여 가족이 만신창이가 되는 그 과정을 공포 전달의 수단으로 그리고 있다. 또한 성서 요한계시록을 바탕으로 ‘적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하는 묵시록적 상상력과 영상이 관객으로 하여금 암울하면서도 묵직한 공포에 서서히, 그러나 어느 영화보다 강렬하게 빠져들게 했다.

이 작품은 스토리의 구성면에서 대표적인 호러 영화중 하나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또 리처드 도너의 능수능란한 연출력, 명배우 그레고리 펙과 리 레믹의 뛰어난 연기력이 잘 버무려져 완성도 높은 호러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토브 후퍼(Tobe Hooper)의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 1982)’, 알란 파커(Alan William Parker)의 ‘엔젤 하트(Angel Heart, 1987)’ 기점으로 그 열풍이 가시면서 몇몇 작품만이 명맥을 이어나갔다.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세기말의 불안한 정서에 힘입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식스센스’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 등 새롭고도 특이한 소재를 가진 오컬트 영화들이 다양하게 선을 보이고 있다.


아주경제= 인동민 기자 idm81@ajnews.co.kr
(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