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외 정책 흐름을 바꾸고 있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외 행보가 매우 빠르다.
올해 들어 7월말까지 그의 대외 행보는 지난 1월 말 방북한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만난 것이 전부였다.
왕 부장의 방북은 당시 고조되고 있던 한반도 긴장상태의 완화에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관측됐으나 김 위원장은 그와의 면담을 자신의 건재를 국제사회에 과시하는 기회로 주로 사용했을 뿐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월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하고 방북했는데도 관례를 벗어나 그와의 면담을 회피했다.
그러던 김 위원장이 지난 4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대외 행보에 본격 나서면서 북한의 대외정책 흐름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그는 클린턴 전 대통령을 만찬을 포함해 3시간 넘게 만나 북미관계 개선과 핵문제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억류된 미 여기자 2명을 특사로 석방시켰다.
이러한 행보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면담으로 이어져 금강산 및 개성관광 재개와 올해 추석무렵 이산가족 상봉 재개 등 꽉 막혔던 남북간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한 합의를 낳았다.
또 6자회담 중국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이 17일 방북함으로써 김 위원장이 그도 면담할지, 그리고 대미관계, 대남관계에 이어 6자회담에 대해서도 북한측의 새로운 입장이 나오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김 위원장은 이같은 대외행보를 통해 1년을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안좋다는 관측이나 북한 급변사태론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고 대내외에 건재와 통치력을 과시했다.
그는 중국, 미국, 한국의 주요 인사들과 차례로 만나 자신의 건강상태를 직접 보여줌으로써 북한의 대외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들의 정부에 자신에 관한 육안관찰 정보가 들어가도록 한 셈이다.
대북 소식통들은 "김 위원장의 건강이 많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에 유리한 대외 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탈출구가 절실한 시점에서 자신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외교 석상에 나타나 현안을 설명할 정도는 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대내적으로도 클린턴 전 대통령을 면담한 후 여름 피서지인 동해안으로 이동, 함경남도 함흥시에 있는 김정숙해군대학 시찰, 1960년대 중국 상하이에 주둔한 중국인민해방군의 부대의 활동을 담은 연극 '네온등 밑의 초병' 공연 관람, 강원도 원산시 송도원 청년야외극장 현지지도, 북한군 부대의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 관람 등의 '바쁜' 행보가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되도록 했다.
그는 또 강원도에서 평안북도 묘향산으로 이동, 16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4시간이나 만난 뒤 평양으로 귀환하면서 시내 중심가에 새로 건설된 과일 및 육류가공제품 전문 판매점인 보통강상점을 시찰함으로써 북한 매체들이 선전하는 '삼복더위 강행군'을 이어가는 이미지를 심었다.
한편 북한 언론매체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클린턴 전 대통령 면담과 현정은 회장 면담 결과를 모두 새벽시간 대에 보도하는 행태를 보였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결과에 관한 '보도' 발표는 지난 5일 새벽 3시38분, 현 회장의 방북 결과인 '공동보도문'은 17일 새벽 4시4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각각 이뤄졌다.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와병 후 재기한 초기엔 그의 건재를 과시하는 현지지도 소식을 심야나 이튿날 새벽에 종종 보도했으나 최근엔 새벽보도가 거의 없었다.
이에 따라 북한 매체들의 '새벽보도'는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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