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꿈도꾸지 못했던 쌀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최근에는 금(金)쌀까지 나와 화제다.
한국이 쌀을 처음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된 시기는 지난 '77년부터다.
그래서 세계식량농업기구(FAO) 등 국제적으로는 한국이 녹색혁명(Green Innovation)을 달성한 해를 1977년으로 본다.
우리나라의 쌀 자급자족 시기를 '77년으로 보는 이유는 쌀 생산량이 당시의 인구 수와 똑같은 4천만석(4170만석)을 넘어선 해가 바로 이 때이기 때문.
쌀 한 석은 장정 한 사람이 들 수 있는 양으로, 성인 한 사람이 1년에 먹는 양과 같다. 144Kg에 해당되는 무게다.
일제 강점기부터 ‘60년∼70년대까지 해도 한국은 매년 ‘보릿고개’란 달갑지 않은 손님을 맞아야 했다.
보릿고개는 지난 가을에 수확한 쌀이 바닥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월-6월까지를 말한다.
그래서 보릿고개를 춘궁기(春窮期, 굶주린 봄의 시기) 또는 맥령기(麥嶺期, 보리가 익어가는 시기)라고도 한다.
이 기간에는 주식으로 먹을 것이 없어 농가에서는 산과 들의 초근목피로 배고픔을 달래야 했다.
한국이 쌀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던 것은 ‘통일벼’ 품종이 농가에 보급되면서 였다.
통일벼는 흔히 ‘밥알이 모래알처럼 뜅긴다’고 말하는 동남아 쌀(인디카종)과 일반벼(자포니카종)를 교잡시켜 육종한 벼 품종이다.
그래서 통일벼 품질은 일반벼보다 떨어지는 대신, 벼 수확량은 일반벼보다 휠씬 낫다.
지난 1975년 기준으로 일반벼 단수(벼 생산량을 세는 단위, 1단은 10아르(300평)당 생산량)는 약 351kg에 불과했으나, 통일벼 단수는 503kg에 달할 정도였다.
그러나 통일벼는 냉해(冷害)에 취약하다는 게 약점이다.
그래서 지난 ‘80년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전국적으로 냉해가 들어 쌀 수확량이 크게 줄면서 식량자급률이 95%로 떨어지자 쌀을 수입했던 적도 있다.
결국 우리는 지난 ‘75년 이후 ‘80년도를 제외하고는 우르과이라운드(UR) 협상에 따른 의무수입물량(MMA)이 발생한 ‘96년 이전까지 쌀이 부족해서 수입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심지어 올해는 최근 5년내 가장 큰 쌀풍작을 거뒀다.
예년의 평균작이었던 457만t보다 무려 35만t이나 많은 492만t을 수확하게 된 것이다. 이는 적정수요량인 437만t보다 무려 55만t이 초과된 물량이다.
이에 따라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들은 쌀 값 안정을 위한 정부의 대책마련을 촉구하며 연일 집회를 갖고 있다.
농가의 또 다른 한편에선 다어어트 쌀, 혈당강하 쌀, 심지어 금쌀까지 새로운 쌀들이 속속 재배되고 있다.
농식품부는 올해 쌀 풍작으로 걱정하는 농가들의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예년의 평년작보다 늘어난 쌀 수확량은 전량 매입할 방침이다.
다시 말하면 그 해의 쌀 수확량에 대한 수요는 정부와 농협이 전량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쌀 풍작으로 매년 되풀이되는 쌀 값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는 이제 농가들이 생각을 바꿀 차례다.
쌀 재배과정에서 한 지역의 전체 농가들이 친환경 유기농 쌀 등 고품질 쌀을 생산하겠다는 공동 책임의식을 갖고 이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
농가들도 이제는 쌀 증산이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고품질 쌀로 농가소득을 올려 활로를 모색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아주경제= 박재붕 기자 pjb@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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