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공연보면서 맥주를 마신다고?!

  • -국내 첫 맥주 반입 허용한 연극 '트루웨스트' 직접 가보니

국내 최초로 맥주를 마시면서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연극 '트루웨스트'의 한 장면

(아주경제 오민나 기자)“봉지 안에 맥주 들고 계신 거 맞으시죠? 맥주는 반드시 뚜껑을 열어서 들어가셔야 합니다. 공연 중 소리가 나면 배우들이 연기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거든요. 다른 음식물은 가지고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지난 5일 오후 8시, 연극 ‘트루웨스트’를 보기 위해 관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트루웨스트는 국내 처음으로 맥주를 마시면서 관람할 수 있는 연극이다. 대부분의 공연장에서는 음료나 음식물의 반입 및 섭취를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3일부터 시작된 ‘국내 첫! 맥주 마시면서 보는 연극’이란 타이틀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술 마시는 공연장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기자 외에 맥주를 들고 들어가는 사람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연극이 시작되자, 분위기는 한결 더 ‘엄숙’해졌다. 관객들이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연중 동생은 담배를 피우며 시나리오를 쓰고, 형은 연거푸 캔 맥주를 들이켠다. 캔 맥주뿐만 아니라 샴페인, 양주 등 각종 술이 무대에 등장한다. 술에 취한 동생의 연기도 압권이다. 하지만 배우 조정석의 연기를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은 많은 여성 관객에게 ‘술’은 술이고 ‘연극’은 연극이라는 듯 별개의 것처럼 보였다. 초반 쉴 새 없는 웃음이 ‘빵빵’터지는 가운데서도 맥주를 마시며 연극을 보는 사람은 드물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공연장의 공기는 더 무거워졌다. 옆 사람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연극 중·후반으로 갈수록 형과 동생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관객의 몰입도도 더 심화됐다. 좌석에 음료를 꽂을 공간이 없어 맥주를 바닥에 ‘놓았다 들었다’를 반복하고 있는 기자의 손이 행여나 다른 사람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설 정도였다. 무대가 어두워지고 장면이 바뀔 때마다 가끔 잔기침소리만이 들릴뿐이다.

 연극 트루웨스트를 준비한 악어컴퍼니의 손형민 홍보팀장은 “2주 동안 입구에서 무료로 맥주를 나눠줬을 때는 맥주를 마시면서 연극을 관람할 수 있어 관객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 관객도 지금보다 더 많았다. 하지만 무료 행사가 끝나자 관객이 다소 줄었다”라며 “지금은 한 회 공연에서 더러 몇 명 정도가 맥주를 마신다”고 밝혔다 악어컴퍼니의 관계자는 이 행사를 기획하며 “국내에서는 이런 행사가 처음이지만, 미국의 브로드웨이나 영국의 웨스트엔드에서는 이미 보편화 된 일”이라며 “대부분의 공연장이 바(Bar)를 운영해 관객이 공연 전·후나 인터미션(중간 휴식시간)을 이용, 가벼운 술과 스낵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극 트루웨스트가 자유롭고 편안한 공연 관람의 기회를 관객에게 제공했으면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 숨죽이며 공연만 관람했던 문화에서 탈피한 이러한 도전은 당분간 시험대에 오를 예정이다. 오히려 관객들은 ‘맥주 이벤트’보다도 연극 후 주인공과 함께하는 행사에 끝까지 자리에 남아 더 높은 관심을 보였다.

조경민 (25· 대학원생)씨는 “연극의 분위기가 마냥 밝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보다도 연극을 관람하는 동안 굳이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전했다. 맞는 말이었다. 맥주를 마시며 연극을 즐기기엔 추운날씨나 화장실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았다.

 연극 트루웨스트가 다소 경직된 한국의 공연 관람문화를 완화하는 데 단초를 제공한 것은 분명하지만, 앞으로 '자유로운' 분위기가 관객들 사이에 녹아들기 위한 시간은 좀 더 필요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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