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농민들은 지독한 가난속에서 두가지 공포에 떨며 살아간다는 말이 있다.
첫째는 사실상 교육기회를 잃어버린데 따른 절망감에서 비롯되는 공포다. 가난한 집에선 자녀를 대학에 보내려면 먹고 입지 않는 것은 물론, 집을 처분해도 쉽지않다. 결국은 무지와 가난을 대물림하고 희망이 없다는 것이 농민들에게 공포다.
또 한가지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다. 돈이나 시설, 제도 뭣 하나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보니 농촌에서는 병에 걸려도 의료혜택을 받기가 쉽지 않다. 큰 병에 걸려도 치료에 엄두를 못내고 속수무책으로 병의 경과를 지켜봐야만 한다.
“가족이든 누구든 병에 걸린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예요. 암과 같은 중병에 걸려도 그저 큰 고통없이 죽는 걸 다행스럽게 생각하지요.” 언제가 간수(甘肅)성에 갔을 때 촌로인 줘(卓)씨는 이렇게 털어놨다.
정부가 농촌 의료개혁을 추진하고 나섰지만 병원 문턱은 갈수록 높아만가고 있다. 줘씨네 마을의 한 중년 여인은 “몇해 전 남편이 위암에 걸렸는데 치료비 7000위안(약 120만위안)을 구하지 못해 그냥 숨지고 말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국 농촌의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의사나 교사, 경찰이라고 대답한다. 농촌 아이들의 이런 장래 포부는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농촌 가정의 아픈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의사와 교사는 현재의 병고와 생활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실한 구원과 같은 것인지 모른다.
중국도 2000년대중반 중학교 의무교육을 도입했다. 하지만 50위안(약 1만원)의 교과서.학용품 값 등 연간 약 1500위안에 달하는 부대 교육비는 농민들에게 여전히 부담이다. 고등학교 조차 농가의 몇년치 순수입을 몽땅 털어넣어야 할 정도니 대학이야 상상인들 할수 있을까.
한 지방신문은 궁핍한 농촌 실정을 전하면서 많은 농촌 아이들이 초등및 중학교를 졸업한 뒤 땔감을 줍거나 거름을 모으는 일로 부모를 돕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가족들이 도시로 돈벌이하러 나갔지만 농촌 가정 소득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결국 농촌 소득을 높이려면 인구수를 줄이는 것 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인구가 줄어들면 호당 경작면적과 인당 생산이 늘어나 순수입이 자연히 늘어나기 때문이다.
중국당국은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1980년부터 '지화성위(計劃生育, 한자녀 정책)'라는 타이틀의 산아제한 정책을 시행해 왔다. 한자녀 정책을 위반할 경우 자녀당 최고 수십만위안까지 벌금을 내야했다.
가난한 집에선 어쩌다 한명을 더 낳아도 호적 등록을 못한채 자식을 유민처럼 살아가도록 해야 했다. 주민등록 없이 살아가는 이들을 가리켜 ‘헤이런(黑人)’이라고 불렀다. 공산당원들이 지화성위 정책을 어기는 것은 큰 수치였으며 공무원의 경우 한자녀를 더 낳다가 발각되면 옷을 벗기도 했다.
‘샤오성콰이푸(少生快富. 적게 낳아 빨리 부자되자)’. ‘성난성뉘이양하오 (生男生女一樣好 아들 딸 모두 좋다. 하나 낳아 잘기르자)’ 중국 농촌 곳곳에서 흔히 대할 수 있는 산하제한 정책 지화성위의 선전 구호들이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표현은 좀 다르지만 우리 유신시대에도 이런 산아 제한 표어가 있었다. 똑같은 산아제한 구호라도 우리 표어가 중국쪽에 비해 훨씬 투박해보인다는 생각을 하니 쓴웃음이 나온다.
이밖에도 중국은 오랫동안 “아들딸 구분말고 하나 낳아 애국하자”고 역설해왔다. 전에는 관에서 나와 임산부를 수소문해 강제 낙태를 시켰을 정도로 제재가 엄격했다.
하지만 인구 노령화 등이 문제가 되자 최근에 와서는 한 자녀 정책을 포기하고 두 자녀 출산까지 허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돼 세월의 변화를 실감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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