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100 - 분양광고

[한국경제, 제3의 길을 묻다] '소심증' 걸린 한국 기업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1-04-17 14:38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대기업 돈되는 일에만 치중…신규창업 법인도 급락세

(아주경제 김유경 기자) 작고한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 회장이 지난해 10월 TV광고에 등장했다. 현대그룹이 현대자동차와 벌어진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정통성’을 무기로 빼들며 내건 광고였다.

이유야 어쨌든 고속성장의 상징과도 같은 정 전 회장이 ‘꿈’과 ‘희망’, ‘가능성’의 메시지를 전하며 광고는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만큼 대다수 국민들은 아직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더 이상 ‘기업가’ 정신을 기대하긴 어려울 듯 하다. 한국 경제는 이미 중년에 접어들어 사회 전반의 활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현재 가진 것을 지키기에 급급, 곳곳에 진입장벽을 설치해 경쟁자의 출연을 막고 있다. 신규창업은 누군가 닦아 놓은 길을 따라가는 식에 그치고 있다.

기업가 정신은 지난 2001년 정 전 회장 타계 및 벤처 '붐' 붕괴와 함께 이 땅에서 사라진 모습이다.

◆ 사라진 ‘다이나믹’… ‘흉내쟁이’만 가득

그 동안 한국 기업의 최대 강점으로 꼽히던 역동성은 앞으로 차츰 위축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미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고, 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들어 과거와 같은 성장지향형 경영을 펼치긴 어렵다는 것이다.

송태정 우리금융지주 수석연구위원은 “소득 양극화로 자산 양극화가 오면서 개천에서 용나기 어려운 시절이 오고 있다”며 “사회 전반의 다이나믹스가 떨어지고 있어 경제의 동맥경화 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층이 창업을 통해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 보다는 공무원 등 안정적인 직업에 몰리는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다.

실제로 사회 전반이 ‘기회’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면서 창업 욕구도 떨어지고 있다.

지난 2002년 6만1852개에 달했던 신설법인 수는 감소 추세를 유지하며 지난 2008년에는 5만855개로 떨어졌다. 지난해에는 6만312개로 늘긴 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으로 발생한 창업이 대다수다.

특히 고용창출 효과가 크고 사회·경제적 혁신을 가져오는 서비스업 및 벤처 창업은 계속해서 위축되는 반면 온라인쇼핑몰 등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낮은 유통·중개 창업은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전문·과학 및 기술 창업은 전년대비 0.7% 감소하는 사이 도매 및 소매업 창업은 11.6%, 부동산업 및 임대업체는 15.9% 급증했다.

또 30대 그룹의 계열사가 5년새 50% 가까이 급증하는 등 대기업들의 문어발식 경영도 창업 의욕을 떨어트리고 있다.

나라 경제를 끌어가는 대기업의 역동성도 위축됐다. 혁신을 통해 기업발전을 추구하기 보다는 현재 사업을 지켜가며 돈 되는 일에만 치중하는 식이다.

삼성전자가 세계 시장을 장악했거나 전략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반도체·초박형TV·스마트폰·태블릿PC 등은 미국·일본 기업들이 선점했던 분야다.

삼성전자는 이들 사업에 후발 주자로 참여해 집중투자-대량생산-원가절감-저가공급 등의 순으로 시장점유율을 확대했다. 수익창출을 위해 새 길을 트기 보다는 남이 펴 놓은 시장을 흡수하는 식의 경영전략이다.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가 지난 2월 아이패드2를 발표하면서 삼성전자에 ‘카피캣’이라고 독설을 퍼부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삼성전자만 그런 것은 아니다. LG전자는 전자산업 분야에서 '2등 주의'를 고수하고 있으며, 현대자동차는 일본차 모방기업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기업 전반에 흉내내기 풍조가 만연해 있는 것이다.

아울러 원자재 가격 불안에 따른 생산비용 관리 문제도 기업의 활력을 떨어트리는 요소다.

금융위기 이후 대량의 글로벌 유동성이 원유·철광석 등에 집중되며 원자재 값이 크게 올라 제조업체들의 부담을 키웠다.

기업들은 원자재 가격이 경영리스크로 떠오르자 투입·생산 활동보다는 인건비 절감 등 비용 관리에 치중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는 결국 경제의 하방경직성을 키워 성장 잠재력을 떨어트릴 수 있다.

◆ 사라진 ‘모델’… “이제는 창조성이다”

사실 한국 기업에게서 창의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일본 등 경제선진국을 모델 삼아 쫓다 보니 사회 전반에 혁신과 창의의 에너지가 부족했다.

기업들은 남을 따라잡는 과정만으로도 충분한 수익 기회와 발전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던 만큼, 필요성 또한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글로벌 수준으로 올라, 더 이상 지향점으로 삼을 만한 ‘모델’이 사라졌다.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혁신을 통해 스스로 해외 기업들의 모델이 돼야 할 시점이다.

현재 기업들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신규 수요를 창출하는 능력이다. 한국 경제의 근간이 제조업인 만큼 새 수요를 키우지 못하면 수익 확대는 요원하다.

노구치 유키오 와세다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소득 수준을 감안한 일본의 브라운관 TV 가격(2008년 기준)은 1970년의 약 10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반면 같은 기간 서비스 가격은 5배 정도 올랐다.

기업이 지속적인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아이패드나 스마트폰 같은 창의적 상품을 개발해 고객의 니즈(Needs)를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업문화가 필요하며, 문화 확산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아울러 벤처창업을 육성하기 위해 창업주에게 기업 소유권을 보장하는 등의 창업 지원책과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투자의 물꼬를 트려면 돈을 벌수 있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며 “법인세를 내리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하는 등 경영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