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감독은 국내 원로 서양화가 김흥수 화백의 외손자로, 학창시절에는 성악과 미술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29세에 영화로 진로를 선회, 2008년 데뷔작 ‘아름답다’로 국내외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그는 이번 ‘풍산개’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상업영화의 테두리로는 도저히 설명 불가능한 제작비로 영화를 완성시켰다. 김기덕감독이 "나를 지켜주는 마지막 사람"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김감독의 애제자다. 김기덕 사단의 차세대 대표주자로 꼽히는 그를 만나 ‘풍산개’의 연출과 제작 과정을 들어봤다.
- 제작비가 불과 2억이다. 완성 자체가 기적이다.
“각 분야 프로들이 모였기에 가능했다. ‘풍산개’ 스태프들은 어느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스스로 선택해 갔다. 주연 배우 캐스팅도 ‘세 작품 이상 주연 경험’이 전제 조건이었다. 윤계상은 ‘비스트보이즈’를 본 뒤 느낌이 왔다. 김규리도 ‘미인도’와 ‘하류인생’ 등 강한 영화를 통해 능력이 검증된 배우 아닌가. 25회차 만에 완성했으니 내가 생각해도 대단했다.”
- 선장과 선원 모두가 훌륭했다는 말 같은데.
“최고의 스태프들이었고, 주연배우인 김규리나 윤계상도 많은 작품을 경험해 왔기에 ‘풍산개’를 끌고 갈 힘이 있었다. 만약 두 사람이 신인 배우였다면 캐스팅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었다.”
-이미지보단 끌고 갈 힘에 주력했나.
“둘 다였다. ‘풍산개’를 준비하면서 18세부터 42세까지의 대한민국 남자 배우는 모두 만나본 것 같다. 윤계상은 보자마자 확신이 들었다. 만나자마자 ‘어 풍산이네’란 말이 나올 뻔 했다. 다른 스태프들은 너무 부드럽다며 반대했는데 내가 밀고 나갔다. 결과가 좋아 다행이다.”
-윤계상 캐스팅에 강한 확신이 느껴진다.
“나는 전작들을 통해 ‘롱테이크만 찍는 예술 감독’ ‘김기덕스러운 영화 찍는 감독’이란 선입견이 생겼다. 결국 다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선입견으로 나를 평가한다는 것이 답답했다. 윤계상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미지로만 굳어진 게 아쉬웠다. 그 배우의 가능성을 꺼내고 싶었다.”
-한국적 정서를 풀어내는 영화적 해법이 절묘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통일에 대한 열망이 있지 않은가. 휴전선을 넘고 싶은 갈망. 영화 속 풍산이 땅굴 파서 남북한을 넘나들어도 됐다. 그런데 장대를 이용해 넘는 방식으로 풀었다. 모든 사람들이 새처럼 그 곳을 넘고 싶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대변하고 싶었다.”
-‘풍산개’에는 액션, 코믹, 멜로, 블랙코미디가 다 있다.
“내가 가진 영화 가치관은 토털 엔터테인먼트다. 영화는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돈을 내고 두 시간을 산 사람들에게 고통이 아닌 재미를 줘야 한다. 남북을 소재로 했지만 30대가 공감하는 재미도 줘야 했다. 그러면 액션 멜로에 코미디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르에 대한 부분은 분명 의도한 것이다.”
-아쉬운 점은 없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시간이 없었다는 것 뿐.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더 흥미롭고 재미있게 만들 수 있었을 텐데…’란 정도.”
-장르 불구하고 너무 김기덕스럽다.
“오히려 김 감독님은 너무 달라서 좋았다고 하시던데(웃음). 내 취향을 많이 넣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김 감독님이 찍었다면 어땠을까’란 생각은 해봤다. 김 감독님이 완성본을 보신 뒤 ‘너랑 나랑은 스타일이 다르구나. 역시 젊은 애가 찍은 것 같네’라고 하시더라.
-김 감독이 “내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인 영화”라고 말했다.
“그 부분은 관객들이 평가해야 한다. 김 감독님은 처음부터 ‘풍산개’를 젊은 시각에서 풀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나 또한 30대 감독이 찍은 30대 영화처럼 보이고 싶었다. 빠른 스피드에 주목하고 싶었다. 30대는 디지털 세대다. 아날로그보단 디지털 세대에 맞는 영화다.”
- 풍산은 대사가 없다. 이전 김 감독 작품에서도 '묵언 캐릭터'는 많았다.
“기존 감독님의 캐릭터와 많이 다르다. ‘빈집’을 예로 들자. 당시 주인공은 감정표출이 없는 유령 같은 존재였다. 반면 풍산은 한이 있다. 눈물도 사랑도 분노도 있다. 총도 맞아 죽을 고비도 넘긴다. 피도 흘린다. 분명 틀린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풍산에게 대사가 있다면 지금의 느낌이 나올까. 처음 의도와는 완전히 달라진 코믹영화로 변신할 것 같은데. 어떤가. 그렇지 않나.”
- 영화 결말을 보자. 좀 더 희망의 끈을 이어줬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지금 편지 한 통 보낼 수 없는 분단의 현실에서 살고 있다. 고통 속에서 산다. 아직 해피엔딩이 아니다. 현재 진행형이다.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분단은 고통이고 슬픔이다.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다. 풍산은 환상으로 시작했지만, 현실로서 끝이 나야했다.”
- 화제를 바꿔보자. 주변 사람이 보는 김기덕과 바로 곁에서 보는 김기덕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 점에 대해선 솔직히 말하기 곤란하다. 다만 이렇게 설명하고 싶다. 내가 ‘풍산개’를 찍을 때 주요 타깃이 30대 여성이었다. 그들이 보고 재미있어야 진짜 재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김 감독님은 자신의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를 좀 강하게 표현하시지 않나. 물론 그 부분에 부정적인 의도는 없다. 감독님의 첫 번째 작품 ‘악어’와 마지막 ‘비몽’을 비교해봐라. 여성에 대한 시각이 같은가. 아마도 선입견이 아닐까. 그냥 이렇게 질문에 대한 답을 하겠다.”
-김기덕은 순수한 사람인가.
“스스로 사람을 정말 순수하게 보고 싶어 하는 분이다. 자상하고 제자에 대한 애착과 애정이 넘친다. 스승보단 아버지처럼 대해줬다. 김기덕 사단이라 불리는 사람 모두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풍산개’ 연출 수락도 스승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나.
“김 감독님의 3년 공백기 이후 우리 주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다시 일어서야 할 시기에 ‘풍산개’가 내 손에 왔다. 시나리오를 건네받은 뒤 의욕이 앞섰다. 하겠다는 말이 나올 뻔 했는데 몇 시간만 달라고 부탁했다. 정말 중요한 시기인데 내가 할 수 있을까란 두려움이 컸다. 하지만 몇 번을 읽고 난 뒤 그냥 하겠다고 했다. 겁이 없었다.”
-김기덕의 이름 때문에 해외에서도 주목할 텐데 영화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해외의 시선은 생각한 적 없다. 한국 관객과의 소통을 먼저 생각했다. 해외 관객과 평단의 이해는 그들에게 맡길 뿐이다. 영화적 해석은 그들의 몫이다. 이해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 김기덕과 장훈의 오해가 풀릴 것이라고 보나.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앞으로 김기덕 사단이 다시 뭉쳤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감독님이 아쉬워했던 부분이 문하생 모임인‘돌파구’의 해체다. 멤버들은 나를 포함해 장철수, 장훈, 조창호, 노홍진 문시현 등이다. 아직 데뷔를 못한 동기들도 많다. 언젠가는 이들과 함께 할 날을 꿈꾼다.
-‘풍산개’의 결과를 예상해 본다면.
“돈으로 만든 영화가 아닌 열정으로 만든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모든 분들 다 정말 열심히 했고, 너무 고맙다. 그 열정과 노력의 가치가 꼭 인정을 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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