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등 금융회사도 인수합병(M&A)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야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같은 인식에는 국내 은행의 규모가 여전히 작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어 회장이 취임한 후 KB금융이 국내 금융시장 재편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던 이유다.
어 회장은 해외 금융영토 개척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국내 은행의 해외 자산 및 수익 비중, 영업 네트워크는 외국 은행에 비해 너무 열악하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그러나 취임 직후에는 어 회장의 구상을 현실화하기가 어려웠다.
4대 시중은행 중 가장 늦게 지주회사로 전환한 탓에 조직이 안정돼 있지 않았던 데다 금융위기 여파로 실적도 바닥을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인원을 보유하고도 가장 낮은 생산력을 기록하는 등 조직의 효율성도 업계 최저 수준이었다.
조직 군살빼기와 실적 개선에 주력했던 지난 1년, 어 회장이 드디어 호기를 만났다.
◆ 우리금융 매각 난항… ‘KB’ 주연으로 떠오르다
비난 여론에 밀려 산은금융지주의 우리금융지주 인수가 무산됐지만 KB금융은 내심 쾌재를 부를 만한 상황이다.
우리금융 매각을 놓고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과 금융당국 간에 교감이 있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KB금융을 비롯한 국내 금융지주회사는 인수 후보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됐다.
그러나 산은지주가 고배를 마신 데 이어 우리금융 매각 작업 자체가 좌초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기회가 도래했다.
이번에 추진했던 우리금융 일괄매각이 실패한 이상 다음에는 분리매각으로 궤도가 수정될 수 있다.
이럴 경우 KB금융은 그 동안 약점으로 지적돼 왔던 비은행 부문 강화를 위해 우리투자증권 등 우리금융 내 비은행 계열사 인수에 나설 수 있다.
금융당국이 일괄매각 방식을 포기하지 않더라도 KB금융은 불리할 게 없다. 어차피 국내에서 인수 후보를 찾을 경우 KB금융과 하나금융지주 정도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금융 매각이 다음 정권 들어 재추진될 경우 KB금융은 어떤 식으로든 수혜를 입을 공산이 크다.
시기도 적절하다. KB금융이 국내 은행 M&A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던 이유는 악화된 수익성과 자사주 매각 등 내부 이슈 때문이었다.
그러나 올해를 기점으로 이같은 변수들이 대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어 회장은 “올해 금융위기 이전 수준의 실적을 회복하겠다”고 공언했다. 지난 2007년 국민은행의 당기순이익은 2조7700억원으로 올해도 2조5000억원 이상은 무난하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오는 9월 이후에는 자사주 매각 이슈도 잦아들 전망이다. 국민은행은 지난 2008년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취득한 KB금융 지분 19.2%를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3년 내에 처분해야 한다.
그 동안 포스코와 SK 등 국내 대기업과 지분 맞교환을 실시하는 한편 외국계 금융회사에 지분 일부를 매각하는 등 보유 지분을 9.05%까지 낮췄다.
최근 주가가 하락하면서 처분 손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저축은행 부실 사태 등 은행주 주가에 영향을 줬던 악재들이 해결되면서 주가 반등의 모멘텀이 다가오고 있다.
업계 최고 수준의 실적을 회복하고 자사주 매각까지 완료하면 홀가분한 마음으로 금융시장 재편 작업에 뛰어들 수 있게 된다.
◆ 해외 진출도 박차… 글로벌 플레이어 도약
KB금융은 주력 계열사인 국민은행의 점포만 1172개에 달하는 등 국내 최대 규모의 영업망을 갖추고 있지만 해외 영업 네트워크는 경쟁사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은행의 해외 현지법인은 2곳으로 신한은행(7곳) 등 다른 시중은행보다 적은 수준이다. 그나마 2곳 모두 동남아시아 지역에 설립돼 있다.
해외 지점과 사무소도 각각 4개와 2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올해부터 해외 진출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연내 중국 현지법인 설립을 위한 작업을 시작해 내년 중에는 공식 출범시키기로 했다.
시가총액 세계 최대 은행인 중국 공상은행과의 업무 제휴 범위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어 회장과 장젠칭(張建淸) 공상은행 회장은 미국 미시건대 동문이다. 또 어 회장은 한국인 최초로 중국 런민대(人民大)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는 등 중국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또 지난 23일 베트남 호찌민에 첫 지점을 개설한 데 이어 하노이에도 사무소를 개설키로 결정하는 등 이머징 마켓에 대한 공략도 강화할 방침이다.
해외 영업력 강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과 함께 인력 육성과 차별화된 금융서비스 제공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어 회장은 “국내 은행들의 국제화 수준이 매우 미미하다”며 “국제화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인재인 만큼 국내 은행에 종사하는 인재들이 좀 더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국내 대기업들은 환거래도 외국계 은행에서 할 정도로 국내 은행들의 국제적 역량이 부족하다”며 “기업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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