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애미헤럴드에 따르면 앤소니의 변호사 호세 바에즈(사진)는 1969년 푸에르토리코에서 태어나 남부 플로리다에서 싱글맘 슬하에서 자랐으며 거의 '망가진' 10대 생활을 보냈다. 17세에 결혼해 아기 아빠가 되었으며 고등학교도 중퇴했다.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마친 바에즈는 이후 해군에 지원했고 정보요원으로 버지니아에서 근무했다. 제대 후 마이애미데이드 커뮤니티칼리지를 마치고 플로리다주립대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97년 세인트 토마스 대학교 법과대학원에 진학했고 이후 한국의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같은 일을 잠깐 하기도 했다.
변호사 시험에는 합격했지만 바에즈가 플로리다 변호사협회에 가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변호사로서 요구되는 수준이 미달했기 때문이다.
바에즈는 의뢰인의 권익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불만을 많이 들었고, 또 돈 개념이 없었는지 항상 신용이 엉망이었다. 거의 신용불량 상태의 바에즈를 변호사협회에서 받아줄리가 없었다. 플로리다 대법원에서는 그의 변호사협회 가입을 8년간이나 막았으며, 심지어는 "법 정의 시스템을 모르는 사람"라고까지 평가했다.
결국 변호사로서 생활이 되지 않았던 바에즈는 비즈니스에 뛰어 들었다. 비키니 수영복을 파는 두 개의 온·오프라인 사업을 했지만 다 실패했고, 나중에는 비영리단체를 만들기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로버트 자비스 노바사우스이스턴대 교수는 "불독같은 사내가 미국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 됐다"며 "사람들은 평소 거친 변호사들을 싫어하지만 결국 필요할 때는 바에즈 같은 사람을 고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바에즈는 마지막 변론에서 의뢰인인 앤소니를 '정숙치 못한 사람(slut)'이라고 칭했다. 의뢰인을 공격하면서 배심원의 동정심을 사는 마지막 전략을 구사했다고 분석되고 있다.
또한 그녀가 '해서는 안 될 행동(no-no)'를 했다며 의뢰인의 잘못을 배심원들에게 인정시켰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배심원들에게 각인시키는 전략이었다. 이틀간에 걸친 배심원들의 논의 속에서 배심원들은 법원 위증만 유죄, 나머지 살인, 가중폭행 등 최대 사형까지 구형받을 수 있는 죄를 모두 무죄라고 평결했다.
앤소니는 자신의 2세 여아 캐일리를 죽인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아이가 수영장에 빠져 사망했다는 주장을 해왔다. 검찰은 앤소니가 캐일리를 살해한 객관적인 증거를 제출하지 못해 배심원들의 무죄 평결을 막지 못했다.
앤소니는 바에즈 변호사를 유치장에서 방을 같이 썼던 다른 죄수한테 소개받았다고 한다. 배심원 평결 이후 일각에서는 "이런 식이라면 앤소니처럼 무죄를 받는 사람이 널렸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사망한 지 오래된 여아의 사체 때문에 누가 어떻게 죽였는지를 밝혀내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앤소니의 부친이 자신이 사체를 유기했다고 했지만 자백일 뿐, 증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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