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홍우리 기자) 지오다노 유니클로 등과 어깨를 견주는 중국 로컬 대표 캐주얼 브랜드 미터즈·본위(美特斯·邦威, Meters·Bonwe)를 만든 저우청젠(周成建) 회장.
농촌 마을에서 수재로 통했던 그였지만 현(縣)급의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촌놈 출신’이라는 놀림을 받기 일쑤였다.
“열등감에 무얼 해도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 커질 수록 자존심도 강해졌어요. ‘나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죠.”
마을에서 작게 잡화점을 꾸리던 아버지를 도와 ‘꼬마 사장님’을 자처했던 저우청젠은 어느 날 기술을 배우겠다는 결심을 한다.
“당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술공 목공 재봉사가 다였어요. 거친 흙이나 딱딱한 나무보다는 천이 훨씬 편할 것 같았죠.”
아버지 지인의 소개로 그 지역에서 꽤나 유명하던 재봉집으로 보내진 저우청젠은 이때부터 재봉틀을 돌리며 바느질하는 남자가 되었다.
이후 1982년, 여성못지 않은 꼼꼼함으로 남들보다 일찍 옷 만드는 기술을 익힌 저우청젠은 중학교를 갓 졸업한 17세의 나이에 고향인 저장(浙江) 칭톈(靑田)현에서 의류공장을 차린다.
저우청젠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공장을 홍보했고 결국 장시(江西)성 징더(景德)진의 한 무역회사와 계약을 맺고 30만위안의 주문을 수주하는 데 성공한다.
칭톈현 신용사로부터 30여만위안을 대출받아 원단을 사고 재봉사 100여명을 동원해 24시간 공장을 돌려 납품을 완료했지만 원단 품질문제로 모든 제품이 반송처리되고 만다.
어쩔 수 없이 공장 문을 닫고 빚더미에 올라 앉았지만 저우청젠은 왜인지 무서운 것이 없었다.
저우청젠은 이를 들고 원저우(溫州)로 향했다. 그리고 사돈의 팔촌까지 모든 인맥을 총 동원해 다시 의류 공장을 세우고 이번에는 안정적으로 사업을 유지해간다.
넘쳐나는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판에 박힌 듯 양복을 찍어내던 저우청젠. 어느 날 소매를 짧게 재단하는 실수로 또 다시 경영위기에 직면한다. 그러나 부족한 부분에 또 다른 천을 덧대 새로운 스타일의 캐주얼로 만들어냈고 뜻밖에 전량 품절되는 행운을 맞게 됐다.
당시 양복 제작 업체들이 선점하고 있던 원저우 의류시장에서 우연한 실수를 계기로 돌파구를 찾게 된 저우 회장은 이 때부터 젊은이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캐주얼 브랜드를 만들기로 한다.
1993년, 저우청젠은 ‘미터즈’를 세우고 ‘국위선양’이라는 뜻의 ‘본위’라는 브랜드를 출시하지만 브랜드 관리 미흡으로 그의 본위를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본위를 포기하고 미터즈를 상표로 등록하지만 비슷한 이름이 많은 탓에 역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저우 회장은 결국 미터즈와 본위를 합쳐 만든 미터즈·본위를 출시했다. 그리고 가격을 흥정하는 것이 관례이던 원저우 시장에서 재료값 전기료 세금 등등 원가를 공개, 소비자에게 가격을 정하게 한 뒤 1위안이라도 남으면 그대로 판다는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창고 제품을 100% 팔아치운다.
이후 1995년 4월, 원저우 매장을 시작으로 미터즈·본위는 세를 넓혀가며 전국 각지로 뻗어나갔고 오늘 날 전국에 매장 1800여개를 보유한 대표 캐주얼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저우청젠 회장은 2010년 204억위안(한화 약 3조4000억원)으로 상하이 의류업계 최대 부호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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