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의수화가 석창우 화백이 작품시연회를 하고 있다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2만2900볼트에 감전된 사나이. 죽다 살아난 그는 생명을 얻은대신 양팔을 잃었다.
잘라진 어깨죽지에 갈고리모양의 의수를 달았다. 숟가락질도 할 수 없고 움직일수도 없었다. 하지만 절망도 하지 않았다. 어느날 4살짜리 아들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못할 것도 없지"하는 생각은 '기적'을 만들었다.
서예가 여태명선생을 만나 글씨쓰는 법을 배웠다. 밥먹는시간 빼고는 온전히 글쓰고 그림그리는 일에 집중했다. 붓이 바닥에 떨어져 도망가고,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발로 먹을 갈았고, 물집이 터졌다. 그래도 갈았다. 연필을 갈고리에 끼고 하루종일 쓰고, 또 썼다. 그렇게 6,7년 자유로워졌다.
1991년 전라북도 서예대전에 입상했다. 잇따라 서예공모전에서 수상했고 갤러리에서 개인전도 초대됐다.
필력, 몸짓은 물론 느낌까지 담아낸 누드와 역동적인 힘이 생생한 그가 창안한 '수묵크로키'는 주목 받기 시작했다.
오는 26일부터 서울 신사동 청작화랑에서 여는 석창우화백의 30번째 개인전은 '대구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와 함께하는 기념전'이다.
오는 27일 시작되는 제13회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맞춰 제작한 작품 30여 점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다.
대구 세계육상조직위원회의 의뢰로 육상경기 장면을 묘사한 그의 작품 2점이 담긴 기념 부채 5만 개가 제작되고 있으며 경기 프로그램 책자 등에도 그의 작품이 일부 수록될 예정이다.
가쁜 숨을 몰아 쉬는 운동선수의 체취가 그대로 묻어날 정도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지나치는 경륜선수들, 볼 하나를 가운데에 놓고 치열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축구선수의 땀냄새까지 훅 지나간다.
서예를 하다가 점차 한지에 먹으로 누드 크로키를 그리는 작업으로 옮겨간 그는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당시 여자 피겨스케이팅 은메달리스트였던 미국의 미셸 콴 선수의 연기에 매료되면서 박찬호, 김연아 등 운동선수들을 그리게 됐다.
“누드 모델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동작들을 운동선수들에게서 발견했어요. 저는 손대신 의수를 착용하고 온몸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선수들을 그리면서 저도 그들처럼 움직이는 것 같은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겠지요.”

보통 한번 붓을 잡으면 빠르고 힘찬 붓놀림으로 단숨에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작품 1점이 짧게는 15초 만에 완성되기도 한다.
석창우의 그림은 보는 이의 숨을 잠시 멎게 할 정도로 생동감이 넘친다. 특히 그가 의수를 드러낸채 온몸으로 움직여 그려내는 시연회는 감동을 넘어 전율까지 선사한다.
'어째서 자유에게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란 김수영의 '푸른하늘을'이라는 시귀가 생각날 정도다.
기적을 만들어낸 작가,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석화백의 작품은 언제나 희망은 있다고 역설하는 듯하다.
"제 내면에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모두 그림에도 쏟아붓었습니다. 제 그림을 보고 그런 맑고 긍정적인 기운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석화백의 이번 전시 시연회는 26일 오후 6시에 열린다. 전시는 9월8일까지. (02)549-3112.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