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금리 인상은 거의 없다“는게 공식 입장이지만 일선지점에서는 코픽스, 양도성예금증서(CD) 연동형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등의 금리를 전방위로 올리고 있다. 가계대출 억제로 줄어드는 수익을 대출금리 인상으로 보전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서민 입장에서는 분통 터질 노릇이다.
◇ ”대출금리 인상 없다“..실제론 대폭 올려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각 은행은 신규대출 잠정중단 등 지난달 18일부터 시작된 대출 억제책 시행 후 가계대출 금리를 거의 올리지 않았다고 말해왔다.
지금껏 대출금리 인상을 공식적으로 밝힌 곳은 마이너스통장 대출의 금리를 0.5%포인트 올린 신한은행과 고정금리대출 이율을 0.2%포인트 올린 우리은행 2곳뿐이다. 이를 제외한 주택담보대출 금리 등은 모두 예전 금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은행들의 입장이었다.
신한은행은 CD 연동형 주택담보대출의 금리 범위를 7월부터 연 5.19~6.59%로 유지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연 4.89~6.33%, 국민은행은 연 5.29~6.59%에서 변함이 없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각 은행은 개별 고객에 적용하는 금리 수준을 이 범위에서 조절할 수 있다. 예컨대 신한은행 고객 중 신용도가 떨어지는 고객은 금리 범위의 최상단부인 연 6.59%의 비싼 대출금리를 적용받지만, 신용도가 좋은 고객은 최하단부인 5.19%의 낮은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
그런데 대출 억제책 이전 연 5.30%의 낮은 대출금리를 적용받던 신한은행 고객이 지금은 일선지점을 찾아가면 연 6.59%로 무려 1.29%포인트나 뛰어오른 금리를 적용받는다. 우대금리를 적용받아도 5%대 후반 이하로 낮출 수 없다.
우리은행 지점도 예전에 연 5.35%의 대출금리를 적용하던 우량고객에게 1%포인트 넘게 오른 연 6.40%의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은행들이 대부분 4%대 중반에서 5%대 중반의 대출금리 범위를 유지하고 있는 코픽스 연동형 주택담보대출금리도 마찬가지다.
회사원 서모(30.여)씨는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코픽스 변동금리대출이 연 4%대 중반이라고 들었는데 지금은 5%대 초반만 가능하다고 한다“며 ”1억원이 넘는 아파트 계약잔금을 대출받아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농협 지점 관계자도 ”가계대출 억제책 이전 4%대 후반의 대출금리를 적용받던 사람이라면 이제 5%대 중반의 금리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예전에 대출금리 범위의 하단부를 적용하던 고객에게 이제는 금리 범위의 상단부를 적용시킴으로써 고객이 부담해야 할 실질금리를 대폭 올려버린 것이다. 대출금리 범위는 그대로 놔뒀으니 공식적으로는 ”대출금리 인상은 없다“고 둘러댈 수 있다.
한 대출상담사는 ”은행들이 언론에 숨기는 모양인데 코픽스, CD 연동형 대출 등 모든 가계대출 금리가 최근 크게 올랐다고 보면 된다“며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유-보금자리론‘ 같은 상품을 권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유-보금자리론은 주택금융공사가 내놓은 고정금리대출 상품이다.
◇ 기존 대출자도 `불똥‘..”은행 수익확대에 혈안“문제는 대출금리 급등이 신규 고객뿐 아니라 기존 대출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통상 같은 대출상품의 금리가 조정되면 그 금리는 신규 고객 뿐 아니라 만기 연장을 원하는 기존 고객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은행 관계자는 ”신규 고객의 대출 금리가 낮아지면 기존 고객도 낮아지고, 신규 고객이 높아지면 기존 고객도 높아진다“며 ”형평성 차원에서 이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만기 연장을 원하는 기존 고객도 급등한 대출금리를 부담해야 한다. 1억원을 빌린 사람의 대출금리가 1%포인트 높아지면 이자 부담은 연 100만원 늘어난다. 반대로 그만큼 은행 수익은 늘어난다.
지난해 신한은행에서 연 9% 금리를 적용받아 3천만원의 마이너스통장 대출을 받았던 A(49)씨는 지난주 만기연장 때 은행에서 대출금리가 연 11.5%로 올랐다는 통보를 받았다.
A씨는 ”재산이나 지위에 거의 변함이 없는데 어떻게 금리가 2.5%포인트나 뛰어오르냐“며 ”언론 보도를 보면 신한의 마이너스대출은 0.5%포인트 올랐다고 나왔는데 실제로는 그 다섯 배가 올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2.5%포인트가 오르면 A씨의 이자 부담은 연 75만원이나 늘어난다.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의 금리범위 내 대출금리 조정 외에도 신용평가 방식을 바꿔 고객의 등급을 떨어뜨리거나 지점장 전결금리를 비롯한 우대금리를 폐지하는 등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의 지상목표는 그해에 제시된 수익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라며 ”대출 억제로 외형 성장이 위축된 만큼 수익 목표를 채우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출금리를 올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서민들이 대출 억제로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악용해 수익을 늘리려는 은행들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가계대출 억제책으로 대출시장이 공급자인 은행 우위 시장으로 완전히 바뀐 상황에서 수요자인 대출 고객은 `울며 겨자 먹기‘로 높은 대출금리를 감당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금융소비자연맹의 조남희 사무총장은 ”은행들이 일제히 대출금리를 대폭 올린 것을 보면 담합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며 ”말로만 서민금융 활성화를 외치지 말고 서민들의 이자 부담이나 늘리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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