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용훈 기자) 국내 상장사들의 '쌈짓돈'이 급격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기 회복 기대감에 투자를 늘렸지만 경기가 호전되지 않아 예상했던 수익을 내지 못한 점이 자금 악화의 직접적 원인으로 지적된다.
특히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영여건이 취약한 중견·중소기업의 자금사정이 더욱 악화된 것으로 드러났다.
3일 한국상장사협의회ㆍ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2월 결산 상장사(유가증권시장) 중 작년 말과 비교가능한 632개사(금융사제외·개별재무제표 기준)의 6월 말 현재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모두 48조1330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말 52조940억원보다 7.6%(3조9610억원) 적은 금액이다. 회사당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762억원으로 6개월 전 824억원보다 7.52% 감소했다.
현금성자산은 만기 3개월 이내에 현금으로 전환될 수 있는 예·적금 등으로 주식 등 증권은 가격 변동성이 높아 회계상 현금성 자산에서 제외된다.
현금성자산의 감소는 유동성 사정이 악화됐음을 말하는 것으로 투자나 채무상황 등 지출된 현금이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보다 많은 것을 뜻한다.
즉, 투자나 채무상환 등으로 지출된 현금이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보다 많다는 이야기다.
실제 올해 상반기 국내 상장사들은 영업활동으로 32조9950억원의 현금을 벌었다. 이에 비해 투자에 쓴 현금은 43조8300억원으로 10조8350억원 더 많았다.
현금성자산이 급감한 기업 중엔 시가총액 기준 중견·중소주에 속하는 기업이 대부분이었다.
현금성자산 감소율이 70%를 넘는 기업 59곳 가운데 57곳이 중견·중소형주였고, 대형주에 속하는 기업은 NHN(-73.98%), 현대백화점(-94.85%) 2군데에 불과했다.
특히 조사대상 기업 632개사중 78곳은 보유 현금 및 현금성자산이 10억원도 안됐으며, 19개사는 1억원 아래였다. 이들 모두는 소형주에 속했다.
한 소형사는 현금 및 현금성자산이 작년 말 대비 97.3% 줄어 고작 152만원에 불과했다. 사실상 주머니가 빈 상태였다. 이 회사는 영업활동에서 279억원이 빠져나갔다.
반면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플러스지만 투자에 돈을 많이 쓴 기업도 있다.
한 회사는 영업활동에서 114억3000만원을 창출했지만 유형자산 취득에 259억1700만원을 투입했다. 이 회사는 현금 부족으로 상반기 484억3200만원을 차입해 절반은 기존 차입금 상환 등에 썼다.
반대로 주요 대기업으로 구성된 10대그룹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의 평균 감소율은 5.0%로 상장사 평균치보다 낮았다.
한화그룹의 경우 오히려 현금성자산이 179.5% 증가했고, 포스코그룹(78.0%), 현대중공업그룹(52.0%)도 늘었다.
현금이 감소한 10대 그룹중 삼성그룹은 33.4%로 가장 크게 줄었다. 계열사 중 최대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전자가 32.1% 감소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진그룹(-15.2%), 현대차그룹(-13.5%)도 비교적 크게 줄었다.
보유 중인 현금 및 현금성자산 규모는 현대차그룹이 7조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LG그룹 3조9250억원, 삼성그룹 3조1630억원, SK그룹 2조1290억원, 현대중공업그룹 1조8740억원 등의 순이었다.
10대그룹 70개사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총 24조6550억원으로 유가증권시장 632개사 전체 유동성의 50%를 차지했다.
업종별로는 비금속광물(-40.7%), 종이목재(-33.1%), 운수창고(-26.4%), 서비스업(-21.4%)의 현금성자산 감소율이 높았다.
안성호 한화증권 기업분석팀장은 "올해 초 경기 회복 전망에 공격적인 투자계획을 세웠던 기업들이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지고 영업환경이 악화되면서 현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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