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부자이야기] ‘의지의 사나이’ 광후이그룹 쑨광신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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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10-1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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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홍우리 기자) 가난한 신발 수리공의 아들에서 신장(新疆) 최고 부자에 등극한 쑨광신(孫廣信) 회장.

쑨광신은 1962년 소수민족이 밀집한 신장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본래 산둥(山東)성 핑두(平都) 사람이나 팍팍한 살림살이에 무작정 신장으로 향했다.

5남매 중 유일하게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쑨 회장은 18세에 군에 입대한다. 군인이 되던 첫 해, 해방군 안후이(安徽) 벙부(蚌埠) 자동차 관리학원에 입학했고 다시 시안(西安) 육군학원에 입학하며 집안에서 유일하게 ‘나랏밥’을 먹게 되었다.

“30세 사단장, 다음엔 장군이다”
인생 첫 목표를 세운 쑨광신은 도서관과 운동장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심신을 단련했다.

대학 졸업 이후 쑨광신은 학교 뜻에 따라 우루무치 육군학원 교관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이 천직이라 믿어 왔던 쑨 회장에게 교관은 어색한 자리였다. 고된 야전 생활을 고집한 쑨광신은 결국 친숙한 신장으로 파견되었다.

부대에서 생활한지 9년이 되던 1989년 3월, 이미 위관(尉官)에 오른 쑨광신은 돌연 전역을 선언한다.

89년 5월, 부대를 나온 그가 처음 시작한 사업은 불도저 등 중장비 위탁판매였다. 쑨광신은 전역하면서 받은 3200위안과 여기저기서 빌려온 3만위안으로 파산 직전 공장으로부터 공장부지 90여㎡를 임대하고 광후이 그룹의 전신인 '신장 광후이 공업무역실업공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불과 6개월 만에 신장 중장비 업체의 10년 판매량인 103대를 팔아치웠다.

같은 해, 쑨광신은 빚더미에 앉은 우루무치 내 광둥식 음식점을 인수했고 이를 기반으로 우루무치 최초의 가라오케 수영장 볼링장과 호텔 등 8개의 오락 사업을 시작했다. 특히 직접 호텔 데스크 업무까지 담당하면서 쑨광신은 석유 개발업체 인사들과 친분을 쌓았는데, 당시의 인맥을 통해 그는 석유분야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후 오락사업을 접고 90년대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었고 2000년대 초반 천연가스 등 에너지 분야에도 진출했다. 그가 이끄는 광후이그룹(廣匯集團)은 오늘날까지 성장일로를 달리고 있으며 업계에서는 '광후이식 모델'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쑨광신의 성공 비결은 바로 '사람'에 있다. 그의 친화력은 인맥과 관시라는 자산을 가져다 주었다. 한번은 고객이 그의 차를 빌려가 사고를 냈는데 쑨 회장은 자신의 손실보다 고객의 안전을 걱정했다고 한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쑨광신의 이런 진실된 마음이 고객의 마음을 움직였고, 이것이 사업 성공에 뒷바침이 됐다.

쑨광신은 자산 25억달러(한화 약 3조원)로, 포브스가 선정한 '2011 세계 억만장자' 458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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