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미국과 유럽 금융회사들도 마찬가지다. 금융권의 탐욕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면서 수수료 인하 요구가 거세게 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은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내 금융권은 금융당국과 소비자들의 압박에 은행 고객과 카드 가맹점에 부과되는 수수료를 큰 폭으로 인하했다.
반면 미국과 유럽 금융회사들은 금융위기로 악화된 수익성을 보전하기 위해 그 동안 무료로 제공해 왔던 서비스까지 수수료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이다.
이같이 극명하게 갈린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에 대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韓, 당국·소비자 등쌀에 백기투항
장기 불황으로 서민 가계와 영세 자영업자들은 생계조차 위협받고 있지만, 은행과 카드사 등 금융권은 사상 최대 실적을 내며 고배당에 성과급 잔치까지 벌여 왔다.
금융권에 대해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게 된 배경이다. 여기에 금융당국까지 소비자 편을 들고 나서자 금융권은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한 발 물러섰다.
은행들은 타행송금수수료(다른 은행 계좌로 송금할 때 부과되는 수수료)를 금액 구간별로 차등 인하했다. 또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송금 및 인출수수료를 주거래 고객 수준으로 낮췄다.
또 대출을 미리 갚을 때 금융회사가 떼 갔던 중도상환수수료도 대출 취급 후 일정기간 동안만 부과키로 하고 수수료율도 인하했다.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카드 가맹점 수수료도 대폭 인하됐다.
변현수 산은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내 금융권의 수수료 체계가 왜곡돼 있다는 정서가 팽배한 상황에서 금융당국도 이에 동감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미국-유럽, “굶어 죽겠다” 수수료 인상 추진
지난해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Occupy(점령하라)’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정도로 미국과 유럽 등 서구에서도 반(反) 금융권 정서가 강하다.
이는 국내와 마찬가지로 수수료 인하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금융회사들은 오히려 수수료 인상이라는 의외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적자를 우려해야 할 만큼 수익성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전체 상업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은 지난해 3분기 말 현재 3.63%로 2년 동안 0.3%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초저금리 기조로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에 따른 수익)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수익성 유지를 위해서는 수수료를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 금융회사들은 당좌예금 계좌유지수수료의 면제 조건을 강화하거나 인하했던 수수료를 원상 복귀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또 현재 무료로 제공하는 거래내역 출력 및 발송, 서류 공증, 대출 연장 등의 서비스도 유료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 상반된 대응 배경은 사업구조 차이
국내 금융회사들은 전통적으로 예대마진 의존도가 높았다. 그러다가 시장이 포화상태에 달하고 금융회사 간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수수료이익에 대한 비중이 높아졌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높은 대출금리에 수수료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불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반해 서구 금융회사들은 예대마진보다 수수료이익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다. 투자은행(IB) 등 기업금융은 물론 개인금융에서도 수수료이익 비중이 굉장히 높았다.
금융위기로 가뜩이나 실적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수료이익까지 포기할 경우 생존 자체가 위태로운 처지다.
이같은 차이가 수수료 인하 요구에 대한 정반대의 대응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서구 금융회사들이 소비자들의 반발을 이겨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유경 신한FSB연구소 부연구위원은 “금융회사는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소비자들은 수수료 수준이 과도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각자의 이해를 관철시키려면 상충되는 시각을 조정하는 작업이 불가피한 만큼 향후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지 관심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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