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신용등급 강등 조치로 유로존 경제가 더욱 악화될 경우 국내에 유입된 유럽계 자금 이탈과 함께 국내 실물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유로존 경제 위기가 하반기까지 이어지거나 미국과 유럽으로 위기가 전이될 경우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했다.
◆ 3월 위기설 현실화 여부 ‘갑론을박’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13일(현지시간) 스페인과 이탈리아, 포르투갈,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몰타 등 6개국에 대한 신용등급을 일제히 하향 조정했다. 또 스탠더드앤푸어스(S&P)와 피치는 이날 산탄데르(Santander) 등 스페인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이번 조치로 유로존 국가들이 3~4월 중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탈리아는 3월 442억 유로, 4월 441억 유로의 국채 만기를 맞는다. 스페인도 3~4월 중 350억 유로 가량의 국채 만기가 도래한다.
상황이 악화될 경우 국내에 유입된 유럽계 자금이 추가로 이탈할 수 있다. 국내 은행들의 유럽계 자금 차입 규모는 600억 달러 수준이다.
유럽계 자금이 빠져나가면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고, 수입물가가 올라 가뜩이나 위축된 국내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신용등급 무더기 강등 사태가 예고된 악재인 만큼 단기적으로는 국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유로존 국가들이 공멸을 피하기 위한 공조에 나선 만큼 만기도래 채권도 무난하게 상환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유로존 내에서 위기 극복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들이 나올 것”이라며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유럽계 자금의 57%가 빠져나갔기 때문에 추가 이탈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
◆ 위기 장기화하면 국내 경제 직격탄
단기적인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올 하반기 들어서도 유로존 위기가 지속될 경우 국내 실물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한국의 유럽 수출액은 전체 수출의 13.5% 정도를 차지한다. 유로존 경기침체가 이어진다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유로존 위기가 국내 실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독일의 결단과 남유럽 국가들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국내 은행들의 외화유동성 관리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은행들이 위기 대비를 위해 외화 차입을 늘려 한 고비 넘겼다고 생각했을 때 오히려 위기가 장기화할 경우 위험이 커질 수 있다”며 “외화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되면 국내 실물경제에 대한 자금 지원도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유로존 위기가 미국과 영국으로 전이될 경우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계 자금이 이탈한 자리를 미국계와 영국계 자금이 메워 왔다. 미국과 영국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 자금 이탈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구조다.
장보형 연구위원은 “미국계 자금은 크게 늘었고 영국계 자금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최고점에서 10% 남짓 부족한 수준까지 확대됐다”며 “유로존 위기가 영미권 은행으로 전이될 경우 국내 외화 자금이 재유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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