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철학자 한병철 "왜 피로한지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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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3-0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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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로사회' 한국어판 출간..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아주경제 박현주기자) 피로는 '간 때문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54·카를스루 교수)씨가 "자기착취 때문"이라며 경고장을 날렸다.

"현대인이 왜 피로한지 아십니까? 곳곳에서 ‘넌 할 수 있어’라고 외치는 과도한 긍정성 때문에 죽을 때까지 일하다 쓰러지면서도 스스로 착취한다는 인식을 못 하는 겁니다. 스스로 가해자이면서 피해자가 되는 거죠."

한 교수는 최근 '피로 사회'(문학과지성사) 한국어판을 출간했다. 그는 지난 8일 간담회를 열고 '긍정주의 성공신화' 이면에 도사린 ‘자기 착취’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더 많이 일하면 더 높은 성과를 인정받고 더 많은 보상을 얻는다.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거나 시키는 사람도 없건만 나는 나의 자유의지로 죽도록 일하고, 그 결과로 죽을만큼 피로해진다. 나는 과연 주인인가, 노예인가."

그는 현시대는 할수 있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입해 개인이 자신을 스스로 닦달하게 하는‘자기 착취’시대가 됐다고 했다.

“자본주의가 얼마나 영악한데요. 과거엔 노예를 부리는 ‘타인 착취’로 생산성을 끌어올리다가 한계에 다다르니까 ‘자기 착취’를 만들어낸 거죠. '너는 할 수 있어’라고 자유를 주면서 더 많은 생산성을 발휘하게 됐지만,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게 되는 거죠. 타인에 의한 착취라면 주인을 죽이면 자유를 얻지만, 내가 주인이자 노예니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겁니다. 스스로 착취하는 노예가 돼버리는거죠. 자기가 자유롭다고 착각하면서.”

그는 "성과주의 사회는 사람들이 완전히 망가질때까지 자신을 스스로 착취한다" 며 "이러한 자기관계적 상태는 자체내에 존재하는 강제구조로 인해 폭력으로 돌변한다"고 밝혔다.

'피로사회'는 한국뿐만이 아니다. 독일도 마찬가지다.“한국이 얼마나 피로한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독일은 아주 심각해요. 이른바 ‘번아웃’ 신드롬이죠. 사람들이 일하다 지쳐 죽는 거에요. 내가 나에게 얼마나 해를 입히고 있는지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얇은 문고판에 쓰여진 이 책은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질병이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우울증은 긍정성 과잉에 시달리는 이 시대의 질병. “Yes, we can(할 수 있어)”을 부르짖다가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우울증이 발발한다는 주장이다.

규율 사회에선 범죄와 미치광이가 많아지지만 성과 사회에서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가 양산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 때문이라고 한 교수는 지적했다.

한교수는 “성과 사회를 극복할 열쇠”를 동양 철학에서 찾는다.“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이 해결의 열쇠라고 생각해요. 쓸모없는 것을 쓴다는 거죠. 시스템 밖으로 빠져나와 사회를 바라봐야 하는데…. 자본주의는 계속 시야를 제한하거든요. 희망을 보려면 우리 사회를 철학적, 논리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 교수는 독일에서 20여권에 달하는 책을 낸 중견 철학자로, ‘피로 사회’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2010년 10월 독일에서 출간된 ‘피로사회’는 지금까지 3만부가 팔렸다. 2주 만에 초판이 매진되면서 지난해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철학서로 꼽혔다.128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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