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에서 중학교 학생이 뛰어내려 자살을 했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친구들은 그에게 온라인 게임에서 자신들의 아이템을 키우라고 강요하고, 온갖 숙제를 대신 시켰다. 괴롭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매일 집과 학교에서 더욱 심한 폭력과 잔인한 인격 모욕으로 이어졌으며, 누구보다 착하고 가엾은 그 학생은 결국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꽃다운 생을 마감했다.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고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인 공분이 폭발하자, 급기야 정부는 지난 2월 6일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관계 장관들을 배석시키고, 국무총리가 근엄하고 결연한 목소리로 학교폭력을 뿌리뽑겠다고 발표하는 모습이 방송 전파를 타고, 신문 지면을 장식하였다. 주요 골자는 학교폭력에 대한 교사의 권한과 역할, 책임을 강화하고 학교폭력 피해학생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며 가해학생을 엄중히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해 한층 강화된 셧다운제와 함께 게임 시작 후 두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게임이 차단되는 쿨링오프제 도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호들갑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학교폭력을 근절시키겠다고 큰소리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1995년 학교폭력 예방 및 근절 대책방안, 2004년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2005년 1차 학교폭력 예방 5개년 기본계획, 2007년 15대 중점과제, 2010년 2차 학교폭력 예방 5개년 기본계획, 이번에 발표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 2005년에도 당시 교육부총리가 관계부처 장관 및 경찰청장 등을 배석시키고 학교폭력 예방 및 근절 의지를 밝히는 담화문을 발표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 일이 계속 되풀이되는 것일까. 그 핵심에는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정부의 무관심과 무능이 자리잡고 있다. "성을 지키지 못한 것은 성벽이 높지 않아서도 해자가 깊지 않아서도 아니며, 바로 그 성 안 사람들이 화합하여 성을 지키려는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다. 정부가 학교폭력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은 그동안 학교폭력을 막기 위한 대책들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진심으로 정부가 학교폭력을 근본적으로 막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표된 대로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고 게임산업을 두들겨팬다고 해서 학교폭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그래도 뭔가를 했다고 스스로 자위하거나 학교폭력의 원흉으로 적당한 마녀를 지목해서 여론을 환기시킬 수는 있다. 그러면서 성난 여론이 수그러들길 조용히 기다릴 수도 있다. 그러다 학교폭력의 희생자가 나타나 사회적 공분이 다시 타오르면 서랍 속에 보관해 두었던 학교폭력 근절대책을 적당히 손질해 다시 내놓고, 또다른 마녀를 학교폭력의 원흉으로 지목하면 그만이다.
학교는 교육을 하는 곳이지 누군가를 벌주는 곳은 아니다. 학생은 성장해가는 과정에 있는 인격체다. 이번에 누군가를 자살로 몰고간 가해학생의 행동을 보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은 분노가 치미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누군가의 아들이며, 그러한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된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누구도 그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 이유에 관심도 없다. 몹쓸 짓을 한 놈들이니 일벌백계로 다스리는 것이 그저 당연하고, 평생 살인자로 낙인을 찍으면 된다. 바로 여기에 우리 사회의 슬픈 폭력적인 자화상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게임을 못하게 한다고 학교폭력이 없어질 것 같지도 않다. 이것은 친구에게 대신 숙제를 시키기 위해 학교폭력이 일어났기 때문에 앞으로 학교에서는 숙제를 내주어서는 안 된다는 대책을 발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식으로 학교폭력 대책을 세우면 노스페이스 점퍼도 나이키 신발도 규제해야 마땅하다. 정부는 이런 식의 미봉책을 반복하기 전에 정부의 학교폭력에 관한 무관심과 무능에 대해 통렬하게 반성하고, 학교폭력 피해학생의 영전 앞에서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그저 말잔치가 아닌 근본적인 학교폭력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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