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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흥 부국장 |
지금으로부터 9년 전, 당시 17세의 한국인 소녀가수 '보아'.
그 해에 일본열도(列島)는 '보아' 열기로 뜨거웠다.
도쿄, 나고야, 오사카까지 보아의 공연이 열릴 때면 일본팬들은 구름같이 몰렸다. 도쿄의 요요기경기장에서 공연할 땐 "아들이 열혈팬"이라며 모리 요시로 전 총리까지 관람했다. 당시 공연티켓 판매수입만 2억5500만 엔(약 25억원)에 달할 정도였다.
일본에서 보아 브랜드의 가치는 1조원. '걸어다니는 1인 기업'인 셈이다. 보아 브랜드는 '소니' '히타치' '도시바'에 맞먹었다.
다시 세월이 흘러 2012년 2월.
프랑스 파리 최대 공연장 베르시 스타디움 앞.
프랑스는 물론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온 유럽 젊은이들이 공연장으로 몰려왔다.
영하권을 맴도는 날씨였지만 이들은 누군가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연호한 이름은 바로 '소녀시대' '유키스' '티아라' 등 한국의 아이돌 그룹.
어깨춤을 추고 파도타기 응원까지 하며 유럽의 청소년들은 K팝스타들의 파리 입성을 환영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파리 공연에는 유럽 각국 청소년 1만여명이 모였다. 그 중심에는 바로 한국의 K팝이 있었다.
소녀시대, 샤이니, 빅뱅, 카라, 슈퍼주니어 등 K팝스타들의 브랜드 가치는 하늘을 찌를 정도다.
최근 미국의 토크쇼에까지 출연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입증한 소녀시대를 일본 경제지 닛케이 비즈니스는 '넥스트 삼성(Next Samsung)'이라고 평가했다. 소녀시대가 지닌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일컫는 비유다
"보아의 경제적 가치가 1조원, 그러면 소녀시대의 경제적 가치는 5조~10조원쯤 되려나…."
세계적 권위의 브랜드가치 조사기관인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글로벌 100대 브랜드(Best Global Brands 2011)'에서 삼성전자는 17위에 랭크됐다. 세계 1위는 수년째 코카콜라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코카콜라의 브랜드 가치는 무려 718억 달러.
지난 80년대 후반, 극장가를 강타했던 영화가 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원주민이 겪는 '문명의 경이감'을 테마로 한 '부시맨'.
그 영화에는 미국인이 마시고 버린 코카콜라 빈 병이 등장한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서 코카콜라 병을 발견한 부시맨을 보면서 관객들은 주인공보다 '코카콜라'를 잔영 속에 남겼다. 이미지가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코카콜라 브랜드 가치는 700억 달러를 훌쩍 넘는다.
그러면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얼마일까.
삼성은 지난 2010년 195억 달러에서 지난해 234억3000만 달러로 상승했다. 지난 2002년 34위(83억 달러)였던 삼성의 브랜드가치는 순위가 10년 만에 17위로 올랐고, 금액도 3배 가까이 치솟았다. 특히 소니(35위), 파나소닉(69위) 등 일본 기업은 삼성전자보다 한참 뒤처졌다.
한국 기업으로는 삼성과 함께 현대차가 100대 브랜드에 올랐다. 지난 2005년 84위로 처음 100대 브랜드에 진입한 현대차는 2009년 69위, 지난해 61위로 꾸준히 순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브랜드가치는 기업가치와 직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은 브랜드경영에 사활을 걸고 있다. 브랜드가치를 높이지 못하면 내수는 물론 해외시장에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시장에서 브랜드가치는 더욱 더 중요해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국내 기업 중에는 삼성과 현대차를 제외하곤 '100대 브랜드'에 오른 기업이 없다. LG, SK, 포스코,롯데 등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들은 내수시장에서는 '최고'지만 해외에서는 초일류기업들에 밀리고 있다.
'아시아의 글로벌 브랜드'라는 책을 펴낸 세계적인 글로벌 브랜드 전문가 마틴 롤 벤처리퍼블릭 대표는 "기업 브랜드 가치는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국내 대기업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면서 우리나라의 국가브랜드 가치도 올라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조사 결과,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가브랜드 종합순위는 15위로 2010년(18위)에 비해 3단계 뛰어올랐다.
17세의 나이에 일본 시장을 정복한 보아의 성공비결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에 있다. 12세의 나이에 현해탄을 건너가 춤과 노래를 배우고 시장에 적응한 것이 주효했다. 소녀시대, 빅뱅 등 K팝스타들의 성공비결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메이드 인 마켓(Made In Market·현지 생산 현지 판매) 전략은 곧바로 K팝스타들의 현지화 전략과 맥을 같이한다.
이제 우리 기업들도 글로벌 브랜드파워를 키우기 위해 세계의 중심지에서 메이드 인 마켓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
수조원에 달하는 '소녀시대 브랜드'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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