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 [사진 = KIA타이거즈] |
(아주경제 이준혁 기자) 안녕하십니까. KIA 타이거즈 이종범입니다. 이젠 제 이름 뒤에 '선수'라는 말을 붙이지 못하게 됐음을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그동안 정말 분에 넘치는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힘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팬과 선, 후배님들 그리고 구단 관계자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갑작스런 은퇴 선언으로 많이들 놀라셨다고 들었습니다. 저 역시 많이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여러분 앞에 분명히 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제 은퇴 결정은 결코 갑작스럽거나 충동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구단에서 은퇴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지난 2008시즌이 끝난 뒤였습니다. 이후 하루도 '은퇴'라는 단어를 잊고 산 적이 없습니다.
그때부터 제 목표는 하나였습니다. 팀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옷을 벗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리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대주자나 대수비로라도 타이거즈가 이기는데 필요로 한다면 끝까지 뛰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수비에 구멍이 나면 내야수로도 다시 뛰었던 이유입니다. 제 은퇴 조건은 그것 뿐이었습니다. 다른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은퇴를 결심하게 된 것 또한 그 때문이었습니다. 팀에서 제가 더 이상 할 몫이 남아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됐고, 이전에 마음 먹었던 것처럼 은퇴를 택하게 된 것입니다.
초라하게 은퇴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마흔이 넘어서도 후배들과 경쟁할 수 있었습니다.
타고난 재능이 저의 전성기를 만들어줬다면 최근 몇 년 간의 생존은 독한 각오와 치열한 노력의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불태웠던 삶이었기에 조금의 후회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타이거즈에 들어오고 싶어서 야구를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해태 유니폼을 입게 됐을 땐 정말 기뻤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꿈꿔왔던대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은퇴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 은퇴는 어디까지나 저의 선택이었습니다. 괜한 오해로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분들의 따뜻한 배려가 있었기에 이 자리에도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타이거즈 선수로 너무도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앞으로의 시간은 그 사랑을 어떻게 돌려드려야 할 지 고민하고 실천하는데 쓰겠습니다.
선수 생활 막바지에 제게 가장 큰 힘이 됐던 건 우리 주위의 아버지들이었습니다. 나이 먹고도 계속 뛰고 있는 저를 보며 힘이 나신다며 손을 꼬옥 쥐어주시던 분들, 그 분들에게서 힘을 얻었고, 또 그분들에게 희망을 드리고 싶어 더 열심히 했습니다.
이 시대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전 이제 선수로서는 은퇴하지만 또 다른 도전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려 합니다. 두 번째 인생에서도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저 혼자의 힘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들의 기운을 모아 꼭 좋은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리고 코치 연수는 지금의 저에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니치 시절 일본 프로야구에서 리그 우승도 경험해 봤고 2군에서 힘겹게 생활하고 있는 선수들과 함께 뛰기도 했습니다. 선진 야구에 대한 부분은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야구는 끊임없이 공부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늘 같은 곳에만 머물러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인생을 보는 시야가 좁아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던 적이 많았습니다. 보다 넓은 세상을 보며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보려 합니다. 좋은 지도자가 되려면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다듬어서 좋은 사람,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공부를 하겠습니다.
언젠다 다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여러분을 만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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