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펀드는 대중으로부터 십시일반으로 선거비용을 지원받는 방식으로 조직 및 자금력이 부족한 정치 신인과 무소속 후보들의 새로운 정치자금 조달 수단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정치인 펀드를 통해 자금을 끌어모은 후보 대부분이 낙선의 고배를 마시면서 파급력이 반감됐다. 낙선한 후보들이 차입한 자금을 제대로 상환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 정치인 펀드 후보 줄줄이 낙선
정치인 펀드는 단기간 내에 선거비용 마련이 가능하고, 이 과정에서 지지세력 결집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19대 총선을 치르면서 공식적으로 정치인 펀드를 통해 선거비용을 조달한 후보는 30여명으로 모금한 돈은 60억원 이상이다.
수십억원의 정치자금이 오고 가는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 펀드의 수혜를 받아 당선된 후보는 민주통합당의 김영환(안산 상록을), 박수현(충남 공주) 후보와 통합진보당의 오병윤(광주 서구을), 김선동(전남 순천) 후보 등 6~7명에 불과하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라는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정치인 펀드 조성에 나섰던 후보 대부분이 조직 및 자금력이 부족하고 인지도가 낮은 정치 신인이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한 정치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당선의 영예를 안은 이들은 민주통합당 등 기성 정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다.
5시간 만에 1억8000만원 가량의 자금을 끌어모으면서 정치권에 정치인 펀드 바람을 일으켰던 통합진보당의 강기갑 후보는 경남 사천에서 낙선했다.
정치인 펀드가 선거비용 마련을 위한 수단으로 쓰일 수는 있어도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 새로운 정치참여 통로 역할 기대
정치인 펀드가 기대했던 만큼의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공무원과 교사 등 정치후원이 금지된 계층이 합법적으로 정치참여에 나설 창구가 마련됐다는게 가장 큰 의의로 꼽힌다.
이들은 펀드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특정 정치인에 대해 지원을 할 수 있게 됐다.
공무원 신분의 한 유권자는 “평소 정치적 신념이 일치한다고 생각했던 후보가 펀드를 조성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1000만원을 투자했다”며 “지원한 후보가 당선돼 뿌듯하다”고 말했다.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선거비용은 차입금으로 충당할 수 있으며 통상의 이자를 주고 자금을 차입할 경우 불법이 아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정치인 펀드는 일종의 사적 계약으로 볼 수 있다”며 “기부나 후원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공무원이나 교사 등 정치참여에 제한을 받는 계층도 참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선거 결과에 따라 투자자 희비 엇갈려
정치인 펀드를 조성하는 정치인과 투자하는 대중 모두 수익을 내기 위한 행위는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돈을 날리고도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다.
정치인 펀드로 차입한 자금에 대해서는 후보 개인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득표율이 15% 이상이 되면 선관위에서 선거비용을 보전해주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후보가 사재를 털어 상환해야 한다.
이에 따라 지지했던 후보의 득표율이 상환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다.
강기갑 후보는 비록 낙선했지만 득표율 15%를 무난히 넘겨 빌린 돈을 제대로 상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정당 공천을 받아 출마한 후보 대부분은 득표율 15%를 넘겼다.
그러나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들은 사정이 좀 다르다.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후 서울 마포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강용석 후보는 득표율이 15%에 크게 못 미쳤다.
무소속인 한창구(분당을), 홍원식(수원 장안), 양홍관(남양주갑) 후보 등도 득표율 15% 달성에 실패해 선거비용 보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해당 후보들은 자금 상환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소액이든 거액이든 돈을 빌려준 투자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투자금 상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정치인 펀드 제도에 대한 불신이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 정치권 인사는 “낙선한 후보가 돈을 갚지 않을 경우에는 민사 소송 등 법적 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며 “정치인 펀드와 관련된 제도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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