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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오름의 분화구에는 병풍림이 자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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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오름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향기짙은 야생화들 |
아주경제 최병일 기자=제주도에는 ‘오름’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구릉이 있습니다. 제주도 방언으로 ‘오르다’라는 뜻입니다. 화산활동 후 생긴 작은 산으로 일종의 기생화산을 말합니다. 제주도는 한라산을 제외하면 모든 산들이 오름이라고 보면 됩니다. 오름은 족히 수십만년의 세월을 품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오름을 다 합치면 오름의 수는 무려 360여개가 넘습니다.
오름은 형태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바늘처럼 생겼다 하여 바늘오름 돛모양이라 하여 돛오름 감나무가 많아서 감낭오름, 바위처럼 생겨서 바위오름이 되었습니다. 제주의 토속어가 붙어 감칠맛나는 오름도 많습니다. 노로(노루)오름, 가세(가위)오름, 비치미(뀡)오름 등이 그것입니다. 오름이 산과 다른 점은 분화구가 있느냐의 여부입니다. 산봉우리와 달리 오름에는 각양각색의 분화구가 있습니다. 분화구에 연못이 만들어진 검은 오름이나 물찻오름이 있고, 열대 수종이 자라는 산굼부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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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오름의 절경 |
허다한 오름이 있고 오름중에서도 이름이 잘알려진 다랑쉬오름이나 모구리오름 높은오름 등이 있지만 이번에 소개할 오름은 아부오름입니다. 아부오름은 ‘앞오름’(前岳)이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인데 인근 송당마을과 당오름 앞에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또 다른 설은 아부(亞父)오름으로도 불립니다. 오름의 모습이 좌정해 앉은 어른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도 합니다. 아부는 아버지의 제주도의 방언입니다. 제주도 사람들은 어쩌면 아부오름을 아버지의 오름처럼 정겹게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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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오름 밑에는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으며 여름을 즐기고 있다. |
아부오름은 사실 그리 크지 않은 오름이다 보니 차를 타고 지나다가는 지나쳐버리기 일쑤입니다. 입구는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한 쪽은 건영목장으로 가는 길이고 또 한 쪽은 오름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길을 잘못들어 목장쪽으로 향하니 한가롭게 소들이 풀을 뜯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오름이 등산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다리가 팍팍해질 정도로 올라가야 정상이 보이지만 아부오름은 불과 50m 정도만 오르면 됩니다. 가볍게 오를 수 있기에 오름이라 이름붙이기도 민망할 정도입니다.
오름이 하도 작아서 올라가봐야 무슨 풍경이 따로 있으랴 싶었는데 막상 오르고 나니 그야말로 신세계가 펼쳐졌습니다. 제주의 아름다운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작은 오름이지만 아부오름은 갖출 것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오름의 중앙에는 분화구 형태로 둥글게 패여있고 경계를 따라 원을 그리며 자라는 삼나무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삼나무의 비경은 1978년 소와 말의 피서림을 목적으로 식재한 것이 어느새 거목이 된 것입니다. 이제는 아부오름하면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나무로 자랐습니다. 오름의 분화구로 내려가면 깊은 만큼 고요하고 나무 끝을 스치는 바람소리만 들립니다. 원래 이 분화구는 개인 소유의 밭이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밭벼를 경작했지만 이제는 삼나무의 요새가 되어 버렸습니다.
오름의 둘레를 따라 천천히 산책을 나서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입니다. 복수초 뿐만 아니라 솜털 보송보송한 노루귀와 산자고 털제비꽃 콩제비꽃 솜양지꽃 금방망이 현호색까지 가히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습니다. 지질학자들은 아부오름에 호수나 습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부오름의 야생화는 봄에서 초여름까지 사이에 절정을 이룹니다. 야생화의 향기가 그윽하게 퍼지는 길을 따라 걸으면 이번에는 삼나무 숲길입니다. 오름의 화구는 제법 깊이가 있습니다. 실제 높이보다 27m나 깊어 78m나 된다고 합니다. 아부오름은 높지는 않지만 면적은 넓습니다. 둘레의 길이는 2012m인데 소슬한 숲길도 있고 소가 풀을 뜯는 초원도 펼쳐지고 전망대처럼 우뚝한 곳도 있어 산책로로는 이만한데가 없습니다. 둘레를 돌아 다시 제자리로 가는 거리만도 족히 30여분이 넘습니다. 길을 걸을때면 반바지 대신 긴바지를 입으세요. 가시나 덩굴이 있어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30여분의 걸친 산책을 끝나고 나면 바람이 신선하게 불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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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오름의 주변은 수많은 오름들이 마치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
정상에서 트레킹을 해도 좋지만 걸을때면 반드시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사방에는 좌보미오름 문석이오름 거미오름 높은오름 다랑쉬 오름 거슨새미 칡오름 안돌오름 등이 눈앞에 잡힐 듯 다가옵니다. 실루엣으로 합작 완성해지는 오름의 선은 제주만이 연출 가능한 절경입니다.
“산의 중심에는 허공뿐이고 모든 둘레가 정상이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있어야할 자리에 가장 낮은 밑바닥이 있어 공간의 개념을 허문다”어느 전문 오름꾼이 말한 것처럼 높음과 낮음이 없는 기이한 공간 구조가 일품입니다.
풍경이 이국적이다보니 아부오름은 영화와 드라마 CF의 촬영장소가 되었습니다. 입구에서 30여m 올라가면 연풍연가의 팽나무와 벤치가 있습니다. 영화속의 인연으로 실제 부부가 된 장동건과 고소영이 애틋한 사랑을 꽃피운 장소입니다. 아부오름에서 찍은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박광수 감독의 ‘이재수의 난’입니다. 이재수의 난은 당시 한창 잘나가는 이정재와 심은하가 주연을 맡았고 당시만 해도 최대 제작비인 32억원이 투입된 한불합작 영화였습니다. 박 감독은 아부오름 분화구에 지름이 1.4km 나 되는 국내 최대의 오픈세트를 제작하였습니다. 제주민병군과 천주교도간의 비극적인 결전을 그린 명장면은 바로 이곳에서 촬영된 것입니다.
최근에는 제주출신 양윤호 감독이 여기수 주희(김태희)가 사고로 말을 잃은 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제주도에 왔다가 비슷한 상처를 안고 사는 우석(양동근)의 도움으로 다시 우승의 꿈에 도전하는 영화 ‘그랑프리’의 한 장면도 여기서 촬영됐습니다.
여름의 시작점 제주도의 푸른바다와 신선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오름에 올라 가볍게 들판을 거닐어보세요. 거기에 생각지도 못한 자유가 꿈틀거리고 있을 겁니다.
여행메모
◆ 교통 : 대천동 사거리를 기준으로 1112도로 비자림 방향으로 4.2km가면 오른쪽으로 이정표 없는 포장도로가 나온다. 길을 따라 1km 직진한 뒤 우회전하고 다시 500m 가면 오른쪽에 ‘앞오름’이라 씌여진 표지석이 보인다. 시외버스는 번영로선을 타고 대천동 사거리에서 내린다. 아부오름까지는 걸어서 가야 한다. 40여분 정도가 걸리지만 길의 풍경이 뛰어나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김녕-덕천-송담- 세화 순환선을 타면 아부오름까지 갈 수 있다.
◆먹거리 : 아부오름 근처 제주도 표선지역 ‘춘자싸롱’은 멸치국수로 유명하다. (064) 787-3124 어진이네물회는 현지인들도 자리돔 물회를 맛보기 위해 즐겨 찾는 집이다. 서귀포시 벌목동에 있다. 자리물회 8000원, 구이 1만 5000원. 732-7442. 표선부두 옆 포구식당도 자리물회, 고등어 조림 등으로 입소문 난 집. 787-1016.
◆ 주변 볼거리: 근처 백약, 좌보미오름을 묶어서 둘러봐도 좋다. 주변의 비자림이나 일출랜드도 같이 보면 알찬 여행이 된다. 같이 엮어 보아도 3~4시간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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