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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반환 15년> 반환후 권력교체와 홍콩의 앞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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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6-2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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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베이징 특파원 조용성 기자 = 생전에 홍콩반환을 지켜보고 눈을 감겠다던 덩샤오핑(鄧小平)은 1997년 2월에 홍콩반환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 중국인민들의 가슴을 안타깝게 했다. 그리고 5개월 후인 1997년 7월1일 새벽 홍콩을 떠나 영국으로 향하는 배에 승선한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마지막 홍콩 총독 패턴 역시 안타까운 마음으로 시야에서 멀어져가는 홍콩을 바라봐야만 했다. 홍콩에서 150여년간 펄럭이던 영국의 국기는 모두 철거됐으며 중국의 오성홍기가 그 빈자리를 채웠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오는 7월1일 홍콩은 주권반환 15주년을 맞게 된다.

홍콩의 주권이 본토로 귀속된 후 초대 행정수반(1997-2002)으로는 홍콩드림의 상징이며, 본토의 중국인들과의 관계가 좋은 기업인 출신의 둥젠화(董建華)가 선임됐다. 그는 해운회사를 설립한 아버지 둥하오윈(董浩雲)를 따라 1947년 상하이에서 홍콩으로 이주해 왔던 인물이다. 사람 좋기로 유명한 둥젠화는 무난히 5년간의 1차 임기를 끝내고 연임(2대)되었지만 2005년 3월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했다. 둥젠화의 잔여 임기를 채우고 3대 행정수반(2007-2012)이 된 인물은 정무사장(총리격)인 도날드 창(曾蔭權)이었다.

도날드 창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불어닥쳤을때 재정사장(財政司長)으로 재임했었던 인물이다. 그는 당시 아시아 지역에서 활개를 쳤던 헤지펀드로부터 홍콩의 금융가를 온전하게 지켜내 홍콩인들의 신망을 얻었다. 또한 그는 사업가 출신의 둥젠화와 달리 30년이상 홍콩에서 관료생활을 해온 인물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3월25일 제4대 행정장관(2012-2017)으로 렁춘잉(梁振英)이 선임되었다. 렁춘잉의 임기는 오는 7월1일 시작된다. 렁춘잉에게는 재정사장과 정무사장을 역임한 헨리 탕(唐英年)이라는 막강한 경쟁자가 있었다. 홍콩 재계와 우호적이었고 중국정부의 고위지도자와의 친분이 두터운 게 강점이었다. 하지만 혼외정사 스캔들에 이어 호화주택 구입에따른 구설수로 낙마할 수 밖에 없었다. 중국정부는 이에 당초 지지하기로 했던 헨리 탕을 버리고 친서민적이며 친중적인 행정회의 의장출신의 렁춘잉을 지원해 당선시켰다.

하지만 렁춘잉은 취임하기도 전에 위기를 맞았다. 홍콩섬 피크에 있는 5억 홍콩달러(약 746억원) 상당의 자택에 건축허가를 받지않은 유리 구조물(9.3㎡)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민단체와 야권이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특히 렁춘잉이 행정장관 선거에서 상대후보를 불법건축물을 지었다며 비난했었다는 점에서 홍콩인들은 그의 도덕성에 회의를 갖게 된 것.

문제가 불거지자 렁춘잉은 사과와 동시에 서둘러 구조물을 철거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홍콩 야권은 선거운동 기간중 렁 당선자가 대중들을 기만했다면서 조만간 법원에 이번 선거결과에 대한 법적검토와 탄원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공세를 펴고 있다. 홍콩반환 15년을 맞아 세번째 홍콩 행정장관에 오를 렁춘잉의 돌파력과 정치력이 시험대에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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