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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준선생 위패- 국립현충원 무후선열제단 봉안.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독립기념관(관장 김능진)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여준(1862~1932)선생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7월 한 달 간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에서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에는 선생의 사진 등 관련자료 13점을 소개한다.
여준 선생은 1862년에 경기도 죽산군 원삼면 죽릉리(현 용인시 처인구 원산면 죽릉리)에서 태어났다. 성년이 되어 서울에서 유학, 1885년 신흥사에서 이상설, 이회영, 이시영 등과 8개월간 교류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1895년 명성황후시해사건이 발생하는 등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되자, 선생은 1898년부터 이상설, 이회영 등과 국권회복운동을 추진하여 1906년 10월 북간도 연길현 용정촌에 서전서숙을 세웠다. 1907년 4월 선생은 서전서숙의 제2대 숙장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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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전서숙 기념비-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시 용정실험소학교. |
1911년 신민회에 의해 유하현 삼원보 추가가에 세워진 신흥강습소는 1912년 통화현 합니하로 자리를 옮겨 신흥무관학교로 거듭났다. 선생은 이때 학교에 부임하여 1913년부터 1917년까지 교장으로 재직하는 한편, 1915년부터 1916년까지 부민단에 가담하여 군자금모집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1919년 2월 27일 대한독립의군부를 결성한 선생은 만주지역 등 국외 독립운동자 38명과 함께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뒤 각지에 배포했고, 1919년 4월 부민단이 ‘서로군정서’로 개편되자 부독판으로 참여하여 대일항쟁을 지속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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