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보다 고운 향기, 편안한 쉼이 있는 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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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7-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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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과 함께 떠나는 명품여행1
시인박남준의 하동 화개 지리산

하동일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박남준 시인

아주경제 최병일 기자=여행은 혼자가는 여행도 좋지만 동행이 누구냐에 따라 여행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기자의 눈이 아니라 문화예술인의 부드러운 가슴으로 바라보는 여행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야생화 하나도 다르게 바라보는 예술인들의 시각으로 새롭게 여행을 떠나려 합니다. 첫번째 아름다운 동행자는 지리산에서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며 청청하게 살고 있는 박남준 시인입니다. 시인은 지리산을 품고 살면서 마을사람들과 밴드를 조직하고 지리산학교의 선생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소개시켜줄 여행지는 자신이 살고 있는 하동일대입니다. 5월이면 벚꽃이 눈처럼 떨어지는 쌍계사 벚꽃 길과 푸른 소나무가 군락지어 있는 송림, 섬진강의 선연한 물빛까지 시인이 일러주는 여행코스를 따라 함께 여행을 떠나볼까요?


“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휴식입니다. 쉼 아주 편안한 쉼이죠”지리산 시인 박남준은 오랜 여행끝에 지리산자락에 정착했다. 인가가 있는 곳의 가장 끄트막에 위치한 시인의 집. 시인의 집은 소담하면서도 깔끔하다. 시인은 한때 잘나가는 직장인이었다. 알만한 회사에 다니던 그가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내려간 것은 경쟁사회가 속도감이 싫어서였다. 처음 그가 거처를 마련한 곳은 모악산이었다. 무당이 살다 떠난 폐가에 거처를 마련하고 버들치를 키우며 소박한 일상을 영위했다. 시인은 여리고 소년처럼 순수했다. 동네 사람이 버들치를 잡아먹겠다고 배터리를 등에 지고 시인의 집까지 와서 버들치를 잡으려 하자 시인은 버들치를 잡는 사람은 인간도 아니라고 버티고 서서 막았다. 모악산 물고기들 모두 자기가 기르는 거라며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소중하게 여기던 그는 오랜 모악산 생활을 청산하고 지리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가 지리산으로 떠나게 된 것은 순전히 친구들 때문이었다. 지리산에도 박 시인처럼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한 이들이 모여 있었다. 어떤 이는 사진을 찍고 또 어떤 이는 박 시인처럼 시인이었고 또 어떤 이는 차를 키우고 덖었다. 도시가 싫었다는 공통점은 있었지만 패배자가 되어 초라하게 떠나온 이들은 아니었다. ‘한때’이들은 모두 잘나가던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는 유명 월간지 기자였고 또 어떤 이는 일간지 기자였다. 국내 최초로 강가푸르나를 정복했던 여성산악인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어린아이들이었다. 속도의 무게를 벗어던진 이들은 지리산에서 만나 소꼽동무가 되었다.
지리산은 시인에게 마치 어머니의 품속처럼 부드럽고 편안했다.

하동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를 알려달라고 하자 시인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미쳤어 내가 그 좋은 곳을 알려주게”대답대신 시인은 지난봄 정성껏 만든 황차를 내놓았다. 눈과 입과 귀가 좋은 곳 맑은 개울 소리 바람소리 풍광 거기서만 맛볼 수 있는 것 그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게 여행이라고 했다. 흔히 사람들이 여행은 재충전에 과정이라고 하지만 시인에게는 여행은 자기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시인에게 잊혀지지 않는 여행지는 앙코르와트였다. 장엄하고 웅장하기도 했지만 한 사원에서 하루종일 묶었던 기억이 그를 사로잡았다. 여름날 돗자리에 누워 죽부인을 끼고 낮잠을 한숨 달게 잤던 기분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었다. 동도 그런 곳이다. 시인이 지리산에 은거한 것도 그때문이다. 햇살 고운 지리산의 풍광과 야생화의 향기, 얼마전 마련한 스쿠터를 타고 회남재를 넘어가거나 가볍게 소풍삼아 송림에 가서 간단한 요기를 하는 모든 것이 즐겁기만 하다. 그러다 지리산 둘레길을 돌기도 하고 수풀속에 묶으며 달디단 낮잠을 자기도 한다.
토지의 주 무대가 된 최참판댁 전경
최참판댁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박남준 시인

시인과 떠난 첫번째 여행지는 최참판댁이었다. 하동을 이야기 할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토지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대지주 최씨 가문의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 박경리 선생의 토지는 단지 한 마을의 이야기만 담은 것이 아니다. 개인사와 가족사를 넘어 우리의 역사와 풍속 사회사를 모두 담고 있다. 실제 하동은 평사리 최참판댁의 서희가 지켜보던 소설속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악양의 평사리는 그런 곳이다. 최참판댁은 평사리 평야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대하소설 ‘토지’에 나오는 고가를 고스란히 재현해 놓은 전형적인 조선 양반가의 모습을 띤 전통가옥이다. 집은 아름답고 고아하다. 드라마 세트장으로 남아있기에는 너무 아까워서인지 요즘 최참판댁은 다양한 문화행사 장소로 두루 쓰이고 있다.

“들판이 보이지요. 악양의 저 너른 들판 아마도 박경리 선생이 평사리를 소설속 공간으로 택한 것은 만석꾼이 나올 것만 같은 너른 들판 때문이었을 겁니다. 사실 최참판댁의 실제 모델은 조씨고가에요. 근처의 상신마을에 있어요. ”
조씨 고가는 조선시대 정승을 3번이나 배출한 명당이다. 180년이 넘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다고 했다.
하동 송림 공원의 소나무는 웅혼하면서 곱다

구례에서 섬진강 물길을 따라가다보면 섬진강변에 울창한 소나무들이 마치 섬처럼 펼쳐진다. 이곳이 바로 하동 송림이다.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다. 천연기념물 455호로 지정된 송림은 영조 21년 도호부사 전천상이 소나무를 심어 모래바람과 강바람의 피해를 막게 한 곳이다. 세월의 더깨가 무겁게 내려앉은 송림은 햇살이 내려앉을 때마다 어른거리며 빛났다. 시인은 송림에서 말을 잃었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소나무의 향기가 은은하게 코속으로 파고들고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살랑거리는데.

지독한 가뭄때문일까? 섬진강의 물줄기는 이미 반이상 말라버렸다. 강가 백사장에는 제첩을 캐려는 휴양객들과 마을주민들이 강속에 들어가 바닥을 훓고 있다. “예전에 고려말 왜구의 노략질이 극심할 때 왜구가 강하구에 침입할때 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섬진 나루터로 몰려와 한꺼번에 울부짖은 거야. 그 소리에 놀라 왜구들이 물러났어요. 이 두꺼비들이 아주 장해요. 왜구에 쫓긴 우리 병사들이 섬진나루 건너편에서 붙들릴 뻔했으나 두꺼비떼가 강물 위로 떠올라 다리를 놓아 병사들을 구했지요. 섬진강은 원래 다사강이나 모레내로 불렸는데 이 후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 되었답니다.”
강물은 유유하게 흘렀다.

쌍계사의 수려한 풍경

시인과 떠난 마지막 여행지는 쌍계사. 예전에 시인을 보러 쌍계사로 향할때 벚꽃이 한참 떨어지던 5월이었다. 벚꽃은 마치 비처럼 떨어졌다. 시인의 머리에도 시인의 발자락에도 벚꽃은 후두둑 거리며 떨어졌다. 떨어지던 벚꽃은 마침내 가슴속에 내려 앉았다. 쌍계사는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온 산이 마치 불처럼 타오르는 가을은 물론 온 산이 순백으로 물든 겨울에도 수려하기 그지 없다. 시인은 절에 들어서니 이미 보살의 얼굴이 되었다. 일주문을 넘어 온갖 삿된 욕망을 훌훌 털어버린 시인의 얼굴은 편온하기 그지 없다.

온갖 풍상을 거쳐 이제 지리산에 돌아온 시인.그는 항상 떠났지만 실상 한번도 떠난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결국 남쪽 악양 방면으로 길을 꺽었다/ 하루 종일 해가 들었다/밥을 짓고 국 끓이며/ 어쩌다 생선 한 토막의 비린내를 구웠으나/ 밥상머리 맞은 편/ 내 뼈를 발라 살점 얹어 줄 사람의/ 늘 비어 있던 자리는 달라지지 않았다/이따금 아직도 낯선 아랫마을 밤 개가/ 컹컹거리며 그 부재의 이유를 묻기도 했다/…/아침이 드는 창을 비워 두는 것은 옛 버릇이나/무덤을 앞둔 여우들이 그러했듯이/나 또한 북쪽 그리운 창을 향해 머리를 눕히고/ 길고 먼 꿈길을 청한다/ 이사 악양 중에서. 어느덧 고운 해는 지리산을 넘어 그림자를 끌고 왔다.여행의 끝에서 시인은 웃고 있었다. 그 미소는 어린아이보다 더 순수하고 지리산 처럼 순박하고 야생화처럼 향기로왔다.
박남준 시인

박남준 시인은
1957년 전남 법성포에서 태어났다. 1984년 시 전문지 ‘시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전북 전주 모악산 시절을 거쳐 2003년부터 경남 하동 지리산 자락에 둥지를 틀었다. 쉰 중반이 넘도록 홀로 지내며, 시와 자연을 벗하며 산다. 시집으로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풀여치의 노래’‘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적막’ 산문집으로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꽃이 진다 꽃이 핀다’‘박남준 산방 일기’등이 있다. 2011년 ‘천상병시문학상’을 수상했다.


박남준 시인의 여행제안 -
화개장터 - 최참판댁 -쌍계사- 하동송림 - 하동 평사리 공원 - 홍쌍리 청매실 농원

가는길 서울- 대전에서 통영·대전고속도로를 이용 함양~진주~하동나들목 부산과 광주에서는 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된다.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하루 7차례 하동행 버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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