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에게 왜 불체포특권이 주어졌을까 한 번쯤 생각해봤을 것이다. 그때마다 의혹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 그럴 수 있다면서 수긍해 왔을 것이다.
그런 국회의원 불체포권 등 특권이 지난 4·11 총선에서 여야의 공약사항이 됐다. 당시 여야는 경쟁적으로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이런 노력 덕택에 선거 전에는 100석도 어렵다고 했던 새누리당이 과반인 151석을 얻었고, 민주통합당도 127석을 차지했다.
선거가 끝난 후 여야는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놓기 위한 방안 마련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에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지난 11일 무소속 박주선 의원과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표결처리하게 됐다. 그러나 박 의원은 가결됐지만 정 의원은 부결됐다.
정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자 새누리당 원내대표단은 충격에 빠졌고, 이후 이한구 원내대표 및 대표단과 정책위 의장단이 모두 사퇴했다.
우리 정치권이 특권의 태풍에 휩싸여 사라질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런 특권법은 언제 어디에서 만들어졌을까. 의원 특권법은 영국에서 왕과 의회의 관계가 긴장과 대립, 투쟁으로 이어진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제도화된 것으로 보인다. 국왕이 의회의 활동을 탄압하려는 목적으로 의원들을 체포하는 사례가 빈번해지자 그에 맞서 의회가 존립을 유지하기 위해 투쟁해 쟁취한 '불체포권'을 명문화한 것이다. 1603년의 '의회 특권법(Privillege of Parliament Act)'이다.
이 자리에서 새삼스럽게 특권법의 역사를 이야기한 것은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불체포권이 왜곡되고 있는데 누구 하나 이를 지적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리 국회의원을 보호하는 법으로 매도되고 있지만, 또 다른 단체의 힘이 커져 비판도 못하게 되는 사태가 오지 않는다고 누구도 장담 못할 것이다. 그때를 조금이라도 예상한다면 지금의 논의는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과거 우리 국회도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1948년 제헌국회 이후 45차례나 제출됐지만 가결된 사례는 9차례에 불과했다. 2000년 이후 본회의에 상정된 체포동의안 19건 중 10건은 폐기 또는 철회됐고, 본회의에 올라간 9건 중 8건이 부결됐다. 군부독재 정권이 국회의원을 억압할 때 정당방위의 수단으로 활용됐던 것이 불체포권이었다.
최근 유일한 가결 사례는 2010년 9월 학교 공금 횡령 등의 혐의를 받았던 민주당 강성종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다. 이를 통해 보면 비리를 저지른 의원을 보호한다는 비판도 퇴색된다.
국민을 대표해 권력에 맞서고 권력에 대한 날선 비판과 감시를 하는 것이 국회의원 본연의 임무다. 이를 위해 국민이 국회의원에게 특권을 위임한 것이지 단지 국회의원의 비리를 보호받으라고 불체포권이 주어진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의 입을 막을 절대권력이 이제는 사라지고, 국회의원을 거수기쯤으로 생각하거나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사라진 사회가 오면 국민 스스로 이를 거둘 것이다.
정치권은 국민들부터 신뢰를 잃고 비난을 받게 되자 이를 비켜가기 위해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한다. 하지만 불체포권은 단순한 특권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에게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라는 뜻으로 국민이 부여한 의무로, 국회의원 스스로 이를 내려놓겠다 아니다 할 자격이 없다.
국회의원이 국민으로부터 상실한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지 고민하지 않은 채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계속 주장한다면 이는 국민을 우롱하고 국회의원으로서 의무와 책무를 던져버리는 행태다. 세비나 챙기는 봉급쟁이가 되겠다고 자청하는 것이다.
이번 19대 국회 들어 여야가 '특권 포기'라는 카드를 정국 전환용으로 이용하려는 목적을 국민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왜 정치권만 모르는 걸까. 정치권은 이제 더 이상 우리 국민을 접시 깰까봐 새 며느리에게 설거지도 못 맡기는 시어머니 취급하는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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