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소개
장웨이잉은 누구인가. 1959년 산시(陝西)성에서 태어난 베이징대 장웨이잉 교수는 중국의 대표적인 시장주의 경제학자다. 장웨이잉교수는 1982년 시베이(西北)대학 경제학과, 1984년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친뒤 1984년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에 근무했다. 1990년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 유학, 1994년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 8월 베이징대학교 교수에 임명, 이 대학 교수로 재직해왔으며 2006년부터 5년간 광화경영대학 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은 중국과 세계에 큰 영향을 가져다 주었다. 30여년간 고속 성장은 서민들의 생활 수준을 크게 향상시켰고 개인의 선택권을 늘리고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했다. 개혁 개방전 중국의 경제총량은 세계 13위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2위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발언권은 점점 더 커졌고 ‘G2’가 국제적인 유행어가 됐으며 사람들은 “전 세계의 리더십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의 눈부신 성장은 중국 사회에 많은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득분배의 불균형, 지역 발전 불균형, 관료들의 심각한 부정부패, 의료 교육 분야의 불평등, 생태환경 오염 등이 성장에 따른 후유증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중국의 개혁개방을 논할 때 필자는 다음 두가지 이론에 대해 관점을 달리한다. 그것은 바로 ‘중국모델론’과 ‘개혁실패론’이다. 중국모델론자들은 중국의 경제 기적이 중국의 독특한 중국모델에서 비롯된 것으로, 주요 특징은 강력한 정부의 규제와 국유 경제의 주도적 역할이고 이는 영미권 서방 선진국이 걸었던 길과도 다르다는 주장이다. 개혁실패론자들은 중국이 현재 직면한 사회적 갈등들은 시장화가 초래한 것이고 기업가들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30여 년 동안 시장화된 개혁정책이 기본적으로 틀린 것이라고 한다.
개혁 반대하는 좌파 논리는 시대착오적 주장
중국모델론은 개발도상국을 연구하는 일부 해외학자들이 가장 먼저 제기한 것이다.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 학자들, 특히 정부 관료들이 이 이론을 신봉하고 있다. 개혁실패론은 주로 중국 좌파학자들의 주장이며 일반 대중, 심지어 일부 정부관료들중에도 적지 않은 신봉자가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 두 가지 관점은 본질적으로는 같다. 이 둘의 공통점은 정부의 힘을 맹신하면서 시장 논리는 믿지 않고, 정치인의 ‘안목’은 맹신하면서 기업가들의 전략은 믿지 않는 것이다. 또한 권위는 맹신하면서 자유는 믿지 않고, ‘나라 사정‘과 ‘특색’은 맹신하면서 보편적 가치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둘다 모두 시장이 이끄는 개혁을 반대한다.
두 사상의 다른 점을 보면 먼저 개혁실패론자들은 과거의 시장화 개혁을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해 계획경제시대로 돌아가자고 주장하고 심지어는 ‘문화대혁명’ 시대로 돌아가 정부로 하여금 자원 배치와 소득 분배를 주관케 하고 민간 기업가들을 없애고 국유 기업이 경제를 지배하게 하자고 한다. 조금 더 공상적인 요소를 가미한 대중의 ‘직접적 민주 참여’ 이야기까지도 나온다. 중국모델론자들은 미래지향적 시장화와 민주화 개혁을 부정한다.
이 두 가지 관점은 모두 일정한 사실적 근거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사실’에 대한 이해는 틀린 것이다. 중국과 서방 선진국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이 중국 정부가 경제나 사회에 관여하는 바가 더 많고 국유기업의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중국은 ‘진정한’ 민주와 법치국가를 세우지도 못했다. 그러나 만약 이로 인해 과거 30여 년 동안 이뤄낸 중국 경제의 눈부신 성장을 중국모델론자들의 주장처럼 단순히 정부의 간섭과 국유기업 덕분이라고 결론 짓는다면, 이는 역사에 부합하지 않는 관점이다.
개혁 과정에서의 중국의 고성장은 중국 정부의 관여가 점점 더 줄어들고 국유기업의 비중이 점점 더 작아졌기 때문이지 정부의 간섭이 많고 국유부문의 비중이 컸기 때문이 아니다. 정부 관여의 감소로 인해 시장 가격이 형성됐고 자영업자, 향진(鄉鎮)기업, 민간기업, 외자기업 등 비(非)국유기업 형식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중국 경제는 붕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높은 성장세도 유지할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지적해야 할 점은 중국이 과거 30여 년 간 이룩한 고성장은 주로 서방 선진국이 과거 몇백 년 동안 창조하고 누적한 기술과 관리 방식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과 관리 방식은 중국과 같이 정부의 관여도가 높고 국유부문이 주도하는 경제체제 안에서는 이뤄낼 수 없다.
법치 시장 자유 민주의 가치를 고양해야
정부의 높은 간섭과 국유기업의 주도는 중국 경제의 기적을 이뤄낸 장본인이 아닐 뿐만 아니라 사실상 이와 반대의 역할이었다. 이들은 개혁실패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중국 사회의 각종 갈등과 불공평한 현상을 초래한 원인이다. 정부가 대량의 자원을 통제하고 경제에 대해 과도하게 간섭하는 것은 ‘정경유착’을 초래한 직접적인 원인이었고 또 관료 부정부패의 주요 온상이 됐다.
만약 중국이 국립병원의 독점적 지위를 없애고 조금 더 일찍 의료시장을 개방해 민간자본의 자유로운 유입을 허가했더라면 ‘진료받는 것이 어렵고 비싸다’는 문제가 이렇게 심각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민간인들이 자유롭게 학교를 설립하도록 허가했더라면 중국 교육의 질은 절대 이렇게 낮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중국이 헌법과 법률의 절대적 권위를 세우고 정부의 권력을 엄격하게 법률 아래로 통제했더라면 절대로 이렇게 많은 ‘야만적인 철거사태’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농민들이 진정으로 토지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절대로 이렇게나 많은 농민의 토지들이 불공평하게 착취되진 않았을 것이다. 만약 기업을 설립하는 것이 정부가 심의, 비준하는 방식으로 일부 사람들에게만 주는 ‘특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평등한 ‘권리’였다면 ‘정경유착’이라는 현상은 절대 이렇게 만연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국민들에게 진정한 선거권과 언론 출판의 자유가 있었다면 관료의 부패한 행위들도 절대로 이렇게까지 창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향후 중국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함이든지 아니면 우리가 현재 직면한 각종 사회적 갈등들을 해결하기 위함이든지 간에 진정으로 조화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시장화 방향의 개혁을 지속해서 견지하고 정부의 자원에 대한 통제와 경제에 대한 간섭을 줄여 진정한 법치사회와 민주정치를 구축해야 한다.
애석하게도 과거 몇 년 동안 ‘중국모델론’과 ‘개혁실패론’이라는 두 종류의 사상은 단순히 ‘이론’에서만 머물지 않고 ‘실천’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이는 정부의 정책 향방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고 개혁을 정체, 아니 퇴보하게 만들었다. 과거 몇 년 간, 개혁의 움직임은 개혁을 반대하는 여론과 정책에 부딪혀 일부 전통적인 계획경제의 수단이 거시정책 공조와 산업 정책이라는 명분으로 부활했다.
이로써 이미 개방됐던 가격 형성 체제가 또다시 정부의 통제 아래에 놓였고, ‘국가의 더 적은 관여, 국민의 더 많은 참여’를 모토로 하는 소유제 구조의 조정은 ‘국가의 더 많은 관여, 국민의 더 적은 참여’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정부의 재정수입은 수 년 간 계속해서 국민경제와 국민소득의 성장 속도를 훨씬 웃도는 수준에 있다. 또 정부의 투자는 민간자본의 생존을 위협하고 기업가의 창업 열정을 이민붐으로 승화시켜 버렸다. 이러한 갖가지 현상들은 향후 중국 경제의 발전에 ‘체제적 결함’이라는 ‘적자’를 안겨줄 뿐만 아니라 중국 사회를 점점 더 조화롭지 못하게 할 것이다.
기사제공:런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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