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 전 관방장관은 8일 요미우리신문에 게재된 연재물 ‘시대의 증언자’ 편집자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993년 발표한 ‘고노 담화’에 대해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미국의 국립공문서관 등의 자료를 신중하게 검토해 당시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내각의 책임으로 결정한 내각의 의지”라며 “고노 담화를 각의에서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이후 모든 자민당 정권과 민주당 정권이 답습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자료상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전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고통을 겪고 있는 여성(위안부)의 존재와 전쟁 중의 비극까지 없었다는 주장에 슬픔을 느낀다”며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으로부터도 일본의 인권의식이 의심받아, 국가의 신용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전임자인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관방장관이 1992년 7월 위안부 문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사과했으나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문서로 확인되지 않았으며, 이에 자신이 경찰과 방위성, 외무성, 문부성, 후생노동성 등 각 부처에 다시 조사를 의뢰했다”고 말했다.
고노 전 장관은 “결국 위안부 16명을 대상으로 한 직접 청취 조사를 통해 일본군이 위협해 여성을 연행하거나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고 속였으며, 때로는 하루 20명 이상의 병사를 상대했고, 일본군이 패주할 때 버려졌다는 증언이 있었다”며 “이런 일들이 일본군에 거역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강제성’을 인정해야만 하는 내용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고노 전 관방장관은 1993년 8월 4일 담화에서 “(일본군)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됐고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는 구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며 “감언, 강압 등에 의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많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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