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의 수호자'란 뜻의 '쿠스토스 카붐(Custos Cavum) 전시장에 누워있다. 살아있는듯 배가 위아래로 움직인다. |
아주경제 박현주기자="원래 예술이란 반은 사기다. 사기 중에서도 고등사기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이라고 했던가.
그런면에서 조각가 최우람(42)의 작품은 '완전 예술'이다. '기계 생물'이라는 '미친 생각'으로 '이 상투적인 세계에 예술적 충격'을 선사하며 얼떨떨하게 하고 있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지하전시장. 거대한 공룡 같기도한 동물이 한 가운데 누워있다. '기계 생물체'가 죽어있는듯한 모습인데 몸통엔 나무같은 형상이 자라나 있다. 마치 SF영화에 들어온듯한 '이상한 공포감'이 지배한다. 가만히 지켜보니 꿈틀거린다. 배가 숨을쉬듯 아래위로 움직인다. 헉~. 살아있단 말인가.(11월1일부터 여는 이번전시에는 8점의 움직이는 조각과 50여점의 드로잉이 전시됐다.)
작가말에 의하면 이 기계생물체는 '쿠스토스 카붐(Custos Cavum)'이다. "남극 빙원 위에 사는 웨테르바다표범”이라는 “작품은 '구멍의 수호자'란 뜻이다. 라틴어의 단어들을 조합해 지었다.
이게 무슨말이란 말인가. 그의 설명은 더 얼떨떨하다.
"아주 오래전 두개의 세계가 있었다. 두 세계는 작은 구멍들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마치 숨쉬는 것처럼 서로 통할수 있었다. 그런데 그 구멍들은 자꾸만 닫히려는 성질이 있어서 각각의 구멍옆에는 늘 구멍을 지키는 수호자가 하나씩 있었다. 하지만 어느날 다른 세계에 대한 기억이 사람들의 머리에서 점차 사라지면서 쿠스토스 카붐들은 힘을 잃어갔고 하나씩 하나씩 죽어갔다. 결국 마지막 쿠스토스 카붐이 죽어가자 마지막 구멍도 닫혀버리고,두개의 세계는 완전히 분리되어 사람들의 기억속에서도 완전히 지워졌다. ...그런데 어젯밤 나의 작은 마당에 마지막 남은 쿠스토스 카붐 뼈에서 유니큐스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세상 어딘가에 다른 세상과 통하는 구멍이 다시 열렸을때 그들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한다는 오래된 이야기처럼…."
'화성에서 온 외계인'인가, 의심도 들지만 웬지 진짜처럼 들리는 그의 이야기는 '신화를 파는 예술'로 선회한 그의 작품에 몰입하게 한다.
쿠스토브 카붐 몸통에서 자라났다는 유니쿠스. 섬세하고 정교하게 제작되어 금방이라도 날아들을 것 같은 분위기다. |
최우람, '한국의 대표적 키네틱 아티스트'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은 정교한 움직임과 기묘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작품은 이미 세계미술시장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2006년 상하이 비엔날레와 2008년 리버플 비엔날레, 일본 모리미술관 뉴욕 비트폼즈 갤러리와 아시아 소사이어티 뮤지엄등 유명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섬뜩한 공포감과 기괴한 아름다움이 교차하는 '기계장치 생명체'는 심장을 지닌듯한 섬세한 움직임으로 위대함을 보여준다. 특히 학명처럼 붙은 작품 타이틀은 읽기도 부르기도 쉽지않은 라틴어지만 그 학명, '탄생 설화'때문에 더욱 실감나게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로 파고들게 한다. 학명 맨끝엔 작가의 이름인 'Uram'을 붙여 마치 식물학이나 천문학같은 과학영역에서 최초 발견자의 이름이 학명에 붙는 관례를 따르고 있다. 작가 스스로 '준( quasi) 과학자로서의 예술가'로 규정하고 있는듯 하다.
최우람 작가가 7살때 그렸다는 로보트 그림. |
'과학자 같은 예술가. "프라모델 산 것만 합치면 아파트 한채를 샀을 정도"로 '장난감 키드'였던 그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제어계측과'를 원했지만 서양화를 전공한 부모님 덕분에 (중앙대)조소과에 들어가면서" 과학자와 예술가의 경계를 뚫기 시작했다.
어느날 '자동차가 야생의 물소떼로, 건물들이 자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내가 기계적인 야생의 정글에 살고 있구나" 는 영감을 받았다는 작가는 초기 '기계가 인간의 행복과 연관되어있는가' 의심하면서 작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지난 10년간 '기계문명에 대한 논의'를 시도했다면, 갤러리현대에서 10년만에 여는 이번 전시는 신화와 종교의 영역까지 확장한 삶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기존 '기계 생명체'가 인간과의 공존에 대한 상상력에 기반했다면, 이번 신작은 그 생명체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실존여부에 대해 탐닉하고 사유하는 과정으로 진일보했다.
'움직이는 기계 생명체'를 보면 영화에서 본듯한, 영화에 나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 "아직, 영화쪽에서 연락이 없네요. 제임스 카메룬 감독 좋아하는데.하하하"
금빛으로 빛나는 파빌리온 속에는 꾸깃꾸깃한 검정 비닐 봉지가 부유하고 있다. 인간이 신성시하고 경배해온 것들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 물음과 인간의 맹목적 믿음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는 작품앞에선 최우람작가. |
한 작품당 제작시간은 7개월. 전기전자공학도 출신 팀원등 7명이 모여 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기계 생명체'를 탄생시킨다. 기획과 설계는 작가가 책임지지만 부인(최영희 조각가)에게 모든 것을 믿고 의지한다는 '팔불출 남편'의 면모도 보였다.
"조소과 출신이어서 제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되죠. 작품 선정부터 제작은 물론 전 과정을 감수 관리하고 있어요."
지난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된 그는 학생들과 공부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고 했다. 작업에만 씨름하다가 '예술이란 무엇인가'등 근본적인 질문과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등 형이상학적인 고민에 빠져있기도 하다고 했다.
"예술이요?. 관객과 오브제 사이에서 발생하는 에너지가 아닐까요?. "
'어느 시대건 예술가는 자동차로 달린다면, 대중은 버스로 가는 속도다.' "이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예술적 충격'을 완화하고 싶다는 작가가 직접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시간에 참여해보는 것은 어떨까. 오는 11월 3일 오후 3시 '작가와의 대화'가 열린다. 전시는 11월 30일까지.(02)2287-3500
4m크기의 거대한 형상의 제목은 '허수아비'. 검은 전선줄을 뭉쳐서 만든 이 작품은 '네트워크의 신'을 형상화한 것으로 사람의 형상으로 새들을 미혹하는 허수아비처럼, 우리 현대인들도 실체가 없는 네트워크의 세계를 숭상하고 종교화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케 하는 작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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