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총기의 나라다. 약 3억명의 인구에 총기가 3억정이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한 집에 차 한대 꼴로 있는 생활필수품 정도다. 문제는 빈번하게 벌어지는 총기사고다. 올해 들어서만 여러차례 수십명의 인명을 한꺼번에 잃었다. 대량살살 무기, 탄창에 많은 총알이 장전되는 자동소총 등 그동안 미 정치권에서 규제를 시사한 대상은 많았다. 그러나 정치권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가장 큰 표면적인 이유는 헌법상의 권리를 시민들이 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1791년 제정된 ‘수정 헌법 2조’는 무기 휴대의 권리를 일반 시민들에게 부여했다. 당초 목적은 광할한 미국땅을 공권력이 다 관할하지 못하므로 민간인·민병대 등에게 총기 보유 권한을 부여, 스스로 범죄나 위험으로부터 지키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총기난사와 대량 학살 사고가 잇따르면서 정치권은 이 수정헌법 2조를 개정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아왔다. 개정하지 않더라도 일반인들의 대량학살 무기 보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잇따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총기규제를 찬성하는 입장이었지만, 최근 10년 동안 아무런 법안을 낸 적이 없다. 근본적인 이유는 총기상, 사냥인 등 총기 규제를 강력 반대하는 전미총기협회(NRA)의 로비 때문이다. 이들의 로비는 너무나 강력한 것이어서 자칫 잘못 건들다가는 정치인들이 표를 잃고 낙선하기도 쉽다고 여겨진다.
NRA는 대형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몸을 낮춘다. 그리고 나서는 하는 말이 “총기 때문에 사고가 나는 것이 아니고 사람 때문에 일어난다”며 “오히려 총기가 길거리, 집, 상가에 더 많이 보급되면 대형 참사를 막기가 쉽다”고 주장한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주장과 논리에도 미국 정치권이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미국은 국민 1인당 총기 보급 정수와 총기 사고 범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지난 1994년 주요 총기관련 법안이 제정된 이후 정치권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지난 2004년 부시 행정부 시절 반자동 소총 소지 제한법이 소멸될 때도 의회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가장 최근인 지난 여름 콜로라도 오로라 극장에서 범인이 총기를 난사해 12명이 죽고 60명이나 다쳤을 때도 당시 재선에 주력하던 오바마 대통령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공화당의 미트 롬니 당시 대선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인권, 권리를 강조하는 나라다. 어떤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가장 먼저 따지는 것이 법리, 법치다. 헌법상 시민의 권리를 먼저 따져보고 이후 나아갈 바를 행한다. 그래서 어찌보면 가장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결정되면 밀어붙이는 힘도 강하다.
수정헌법 2조는 민간인들의 총기 소지를 허용했지만, 현재 정치권 일각에서는 총기 구입 규제 및 자동소총 등 대량학살 무기 소지 규제를 강화하면 헌법에 위배되지 않고서도 이같은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이도 충분한 답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버지니아 참사를 비롯해 12번의 가장 참혹한 총기난사 사건 중에서 절반이 지난 5년간 일어났다. 대책이 시급하게 만들어져야 하는 이 때지만 코네티컷주 참사가 일어난 전날 미시건주에서 일반 공원, 레스토랑 등에서 총기를 은닉하지 않고 휴대할 수 있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는 등 여전히 미국은 총기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여론도 중요하다. 얼마 전 시행된 한 여론조사에서 총기 휴대 규제에 찬성한 여론은 43%였지만, 그대로 놔둬야 한다는 의견은 50%가 넘었다. 여전히 미국인들의 절반 이상은 ‘대형 참사가 나더라도 총기 휴대는 나와 가족을 지키는 기본 권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재선의 부담이 없어진 오바마 대통령이 나서주길 바라고 있다. 애도성명을 발표한 오바마가 “정치를 떠나 이제는 무언가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라고 말한 부분에서 미국의 역사적인 총기 휴대 관련 규제법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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