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무시론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4-01-14 18:26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이상면 전 서울대 법대 교수, 본사 객원논설위원

이상면 전 서울대 법대 교수, 본사 객원논설위원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후 혼란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최빈국 상태에 처해 있었는데, 용케 경제 건설에 성공하여 얼마 전부터 선진국 초입에 들어선 것으로 유명하다. 각국 언론에서 이를 두고 교과서적인 경제발전이라고 하고,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신장에서도 동아시아 선두에 섰다고 칭찬한다.

이러한 괄목할 만한 발전은 어느 한 세대가 이루어낸 것이 아니다. 일제 침탈의 강토에 건국하여 6·25전쟁의 비극을 겪으면서 나라를 세워낸 건국세대와 '하면 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경제 건설에 일로매진한 경제건설세대를 거쳐서, 민주주의 달성을 위해 투쟁한 민주화세대를 거치면서 이루어낸 국민 모두의 성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세대간에 장벽이 높다 보니 갈등의 골이 깊은 것이 문제다. 반목과 질시까지 존재한다. 민주화세대는 마치 일본이 스스로 망하여 저절로 나라를 찾은 것으로 건국세대를 폄하하고 한반도 분단을 건국세대의 죄로 규정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경제건설세대에 대해서도 군사독재를 업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은 죄로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건국세대와 경제건설세대는 민주화세대가 차용한 사회주의적 투쟁방법을 들어 용공좌익으로 몰아 공격한다.

지나간 세대의 공로를 부인하거나 폄하한다고 하여 그 공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비난을 일삼는다고 비난하는 자의 공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각 세대가 이룩한 공적을 부인하는 것이 별 소용이 없다면, 이를 화해로 풀어 일대 화합의 장을 열면 어떨까? 우리와 상황은 달랐지만, 갈등과 충돌에서 화해와 화합의 새 역사를 이루어낸 넬슨 만델라의 공적은 세계인의 귀감이다.

요새 우리나라에서 소통이라는 말을 잘 쓰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실제로 소통을 잘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세대간 장벽이 워낙 심하다 보니 소통이란 그저 장벽에다 귀를 대고 엿듣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세대가 노년층에게 지혜를 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러 해 전에만 해도 지하철에서 노년층 인사가 더러 젊은이의 잘못을 타일러주는 경우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젊은 세대는 노년층· 장년층으로부터 무슨 지혜를 구하려 하기는커녕 그들이 사회에서 퇴출되고 사라지기를 바라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나는 언제부턴가 여간 가까운 제자가 아니고서는 추천서를 쓰지 않게 되었다. 추천서를 써줄 만한 선행과 정리가 아쉽거니와, 굳이 써주어도 한 번 받아가면 끝이기 때문이다. 이메일에 전화, 문자에 통신이 편한 세상에도 추천을 받은 자가 그 후 어디로 갔으며 어떻게 하고 있다는 소식 하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해 전부터 주례도 서지 않는다. 주례를 서주면 사진 한 번 찍고 끝이기 때문이다. 더러는 노자는 고사하고 밥도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신혼여행을 어디로 갔으며 어떻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본 일이 없다. 인간미가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강학에 분망한 내가 비정의 인간에게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헛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현상은 스승과 제자 사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사와 부하 사이에는 더 심하다. 사회 이곳 저곳에 더 험한 예가 더 많다. 상하간에 협력이 안 되면 누가 손해를 보겠는가? '부족한 자'가 선대의 지혜나 도움이 없이 자력으로 하다 보면 시행착오가 따를 수 있다. 서로가 무시하는 불신사회에서 '부족한 자'가 동급의 경쟁자와 소통과 협조를 잘 이루어낼 수 있을까? 이길 수 있는 경쟁에서 어리석어 패배하는 자들을 많이 본다. 수도 써보지 못하고 지는 자가 세상을 비관하는 어리석은 이유가 무시에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