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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어느 택배기사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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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1-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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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도화동 CJ대한통운 중구지점에서 택배기사들이 일명 '까대기' 작업을 하고 있다.


아주경제 강규혁 기자 ="평소에는 11시 정도면 나가는데 오늘은 '까대기'할 게 많아서 12시 반은 돼야 할 거 같아요"

5년차 택배기사인 김용훈씨는 짧은 인사 후 곧바로 레일로 눈길을 돌렸다. 인사를 나눈 시간은 오전 10시, 기사들이 일명 까대기라 부르는 택배 하차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7시 무렵 출근한 택배기사들의 하루는 이 까대기와 함게 시작한다.

각자 지정된 위치에 자신의 차량을 주차시키고 레일을 따라 지나가는 물품들의 주소를 확인해야 한다. 자신이 맡고 있는 지역의 물품을 제때 집어내지 못하면 자연스레 하차작업이 길어지기 때문에 긴장할 수 밖에 없다. 옆 자리 동료가 차에 물건을 싣고 있을 때면 해당 기사의 물품들까지 봐줘야 한다. 

더욱이 최근 도로명 주소의 시행으로 하차업무 시간이 더 길어졌다. 아직까지는 구주소를 사용하거나 도로명 주소를 쓰더라도 기존 지명을 병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칫하다가는 물품을 놓칠 수 있어 모두가 예민해진 상태다.

"워낙 물건이 많다보니 가끔 제 주소지의 물건을 한번에 집어내지 못할때가 있어요. 예전 같으면 기사들이 서로의 지역을 다 알고 있어서 대신 집어놓기도 하고 전달도 하는데 아직은 도로명 주소에 익숙치 않아 자기 물품 챙기기에도 바쁩니다"  
 

기사들은 외부에서 진행되는 하차작업 시간 동안 추위를 쫓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한다.


1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레일로 쏟아지는 물품들은 쉽사리 줄지 않는다. 설을 앞둔 특수기다 보니 기존 물량에 선물세트와 개인택배 물량이 더해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보통 지금쯤이면 슬슬 큰 소리도 나고, 서로 동선을 고려해 도와달라는 이야기도 나눠요"라고 김용훈씨가 슬쩍 귀띔했다. 

실제로 11시가 지나자 기사들 앞에는 오늘 배달해야 할 물품들이 산더미같이 쌓여갔다. 이미 차량 내에는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어 보였지만 내일로 미룰 수 없는 물품들이 대부분이다. 운전석 옆자리에는 미처 실리지 못한 소형 박스나 서류 뭉치등이 자리를 잡았다.

"저 같은 회사 직원들은 그래도 배달량이 적은 편이에요. 일반적으로 180개에서 250개 정도 처리하죠. 지입차 기사님들은 보통 300개는 기본이에요"
 
김씨가 본격적으로 택배배달에 나선 것은 1시가 훌쩍 넘어서였다. 마포구 도화동 물류센터에서 배송지역인 중구 신당동까지 이동하는 데에도 20분 가량이 소요된다.

하지만 배송시간이 결코 여유있는 것은 아니다. 4시 반부터는 화주사들을 돌며 물건을 '픽업'해야 한다. 이후 센터로 돌아와 물건을 하차하면 10시가 넘기 일쑤다. 당연히 점심은 거르는 날이 더 많다. 이날도 김씨는 차 안에서 김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김씨가 속해 있는 중구 2팀의 경우, 주택가나 아파트 물량이 많은 편이다. 기사들별로 사무실, 아파트 등 선호하는 배송지가 서로 다르다고 했다.

신당동에 도착했지만 김씨는 물량이 많은 동료의 부탁으로 10여곳을 먼저 들러 배송을 마친 후에야 본격적으로 자신의 업무를 시작했다. 
 

요즘 같은 특수기 택배기사 한명이 하루에 배송하는 물량은 250~300개에 달한다.


"전날(20일) 눈이 많이 내린데다 도로까지 얼어서 어젠 차가 미끄러지기도 했어요. 그래도 여기(신당 6동)는 다른 동네보다 길도 좋고 오르막길도 없어 수월한 편이에요"라고 김 기사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 넘겼다.

배달과정 역시 순탄치 않다. 주택가와 일부 업무지역 배송을 마치고 아파트로 들어서자 본격적으로 배송해야 할 물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아파트의 경우 소비자들이 부재 중일 때가 많고, 각 아파트별로 동선이나 관리실에 맡기는 방법 등이 상이하다 보니 인지해야 할 점이 수십가지가 넘었다.

"설 선물세트 중에는 음식물이 많아서 일일이 전화를 해 집에 계신지, 안 계시면 관리실에 둘지 내일 다시 올지 확인을 해야돼요. 문자로도 남겨야 하구요"

어떤 소비자는 자신이 차로 5분거리에 있다며 그쪽으로 물품을 직접 가져다 달라고, 돈 받고 일하면서 왜 그것도 못해주냐고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집에 있어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 소비자도 적지 않았다.
 

김용훈 기사가 택배배송을 위해 끌차에 물품을 실어 운반하고 있다.


김씨는 "이런 경우는 워낙 많아서 이젠 익숙해요. 다만 아직도 저희가 하루에 물품 열댓개 정도만 배달하는 걸로 아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아 씁쓸할 때는 있어요"라고 말했다. 

택배기사들의 현실이 사실과 다르게 알려진 점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주위에서 택배물량 늘었으니 돈도 많이 벌겠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물량은 급증하는데 단가는 크게 달라진 바 없다보니까 택배기사를 하려는 사람들도 갈수록 줄고, 서비스 질도 자연히 떨어질 수 밖에 없어요. 소비자들과 언론이 택배업계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서둘러 다음 배송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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