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오늘은 쌍용중공업이 주식회사 STX로 거듭나는 영광스럽고 뜻 깊은 날입니다. 제2창업 선언과 함께 이제 주식회사 STX로 거듭나고자 합니다.”
2001년 5월 2일 창원시 성산동 80번지 쌍용중공업 엔진공장 사무실 앞에서 열린 STX그룹 출범식. 강 회장의 STX그룹은 이렇게 출발했다.
1973년 쌍용양회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특유의 성실함과 뛰어난 재무능력으로 승진가도를 달렸다. 쌍용중공업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재임하던 당시 IMF외환위기로 모 그룹이 흔들리며 회사가 유동성을 겪게 되자 자신의 개인재산을 담보로 잡아 은행으로부터 운용자금을 마련해 직원들에게 월급을 지급했을 정도로 모든 것을 올인했다.
매물로 나온 쌍용중공업을 버릴 수 없었던 그는 사재 20억원을 털고 펀드를 끌어들여 회사를 인수해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했다.
이날 강 회장은 직원들에게 △STX를 중형 디젤엔진 일류 기술기업으로 육성 △주주와 고객만족 경영 실천 △종업원의 미래와 회사발전을 통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 △미래사업에 대한 투자와 연구개발을 약속했다. 이는 오너를 오래 모시며 경영수업을 받아온 그는 자신이 CEO가 되면 펼치고 싶었던 꿈이었다.
강 회장의 꿈은 이후 활화산처럼 피어올랐다. ‘비도불행’(非道不行,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다)'란 문구를 늘 되새기며 남이 가려고 하지 않는 길만을 고집했다. 출범 첫해 STX중공업을 설립하고 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에 이어 2002년 산단에너지(STX에너지)를 인수했다.
2004년 쌍용중공업 사명을 STX엔진으로 바꾸며 지주사 체제를 구축한 강 회장은 STX중공업을 설립하고 범양상선(현 팬오션)을 인수하며 조선·해운 부문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다. 2005년에는 STX건설을 설립하며 건설업에도 진출했다.
2007년에는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던 글로벌 크루즈선사인 야커야즈(현 STX유럽)를 인수해 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야커야즈 인수로 인수·합병(M&A)의 귀재라는 그의 별명을 얻은 그가 계약서에 서명한 뒤 내뱉은 “내가 정말 엄청난 일을 저질렀구나”라는 말은 STX그룹에서는 여전히 유명한 일화로 전해 내려온다.
그룹 설립 첫해인 2001년 5000억원에도 못 미쳤던 매출은 2012년에는 18조8000억원까지 불어나며 STX그룹은 재계 서열 13위에 까지 올랐다.
2005년 440명에 이르는 첫 그룹 공채 신입직원을 뽑은 뒤 기쁨을 감추지 못했던 강 회장은 신입직원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사가(社歌)를 제작했다. ‘보라! 여기 해양대국 꿈을 안고 지구촌 곳곳서 도전하는 STX’로 시작되는 사가의 첫 구절에도 꿈이 들어있다. 그는 이 꿈을 직원들과 공유하기 위해 이들을 모두 크루즈선에 태워 연수를 보냈다.
끝없이 뻗어나갈 것으로만 여겼던 강 회장의 STX그룹은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는다. 누구도 예측 못했던 단 한 차례의 시대적 변화가 결국 그와 STX의 추락을 불러 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이다.
이후 어떻게든 생존을 위해 피말리는 싸움을 했으나 2013년 3월초 STX그룹은 계열사 팬오션이 공개매각을 추진하면서 위기설이 현실화 됐고 이어 이어 핵심 계열사인 STX조선해양이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 개선)에 버금가는 채권단 자율협약 체제로 전환됐으며, STX건설은 법정관리를 받게 됐다. STX중공업과 STX엔진도 뒤따라 자율협약 체제 속에 편입됐으며 STX팬오션마저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그룹 전체가 와해하는 현상이 도미노처럼 이어졌다.
마지막까지 회사를 살리기 위해 강 회장은 또 다시 사재를 모두 출연했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었다.
11일 그룹 지주사 역할을 했던 (주)STX는 이사회를 열어 강 회장의 퇴진 및 서충일 고문을 대표이사 사장 선임안건을 의결했다. 앞서 지난해 7월 STX팬오션 대표, 9월 STX조선해양, 11월 STX중공업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강 회장은 이날 이사회의 결정으로 ㈜STX 경영에서도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출범 13년 만에 해양대국을 향한 그의 꿈은 일단 마침표를 찍었다. 전날 강 회장은 직원들에게 전한 마지막 말로 “꿈을 이뤄달라”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회장은 일단 STX엔진 이사회 의장과 STX장학재단 이사장의 직함은 유지한다. 두 자리 모두 경영에 구체적으로 관여할 만한 자리가 아닌 데다 이마저도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강 회장의 신화가 여기서 끝날지 여부는 강 회장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유년시절부터 어려움을 딛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그가 상처를 딛고 재기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많은 이들이 희망하고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