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부원 기자 = 금융당국이 대규모 정보유출 사태와 관련 '외국계 금융사 봐주기' 논란에 휩싸였다.
KB국민·NH농협·롯데카드에 대해선 이례적으로 신속히 징계를 내린 반면, 정보유출 사실이 먼저 드러났던 한국스탠다드차타트(SC)은행과 한국씨티은행에 대해선 조사 과정이나 징계 수위 등에 대해 별다른 언급조차 없기 때문이다.
정보유출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끝나지도 않았고 고객들에 대한 보상 방법도 논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3개 카드사에 징계를 내리는 데에만 급급했다는 비판도 쏟아진다.
◆ 1억건 VS 13만건…단순비교?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3개 카드사에 각각 오는 5월16일까지 영업정치 처분과 과태료 600만원의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SC은행과 씨티은행에 대한 징계 수위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정보유출 규모만 봐선 당연히 3개 카드사에서 일어난 사태가 훨씬 심각하다. 3개 카드사에서 유출된 규모는 1억건이 넘고, 두 외국계 은행에선 약 13만건의 고객정보가 유출됐다.
그러나 SC은행과 씨티은행의 정보유출 사실이 알려진 것은 지난해 12월11일께다. 당시 금융당국은 이 문제에 대해 엄중히 경고했을 뿐 별다른 후속대책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동안 했던대로 특별검사를 실시하고, 적절히 징계를 내리면 된다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리고 20여일이 지난 뒤 연초부터 3개 카드사에서 대규모 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드러났다. 무려 1억건 이상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자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고, 해당 카드사 사장들은 서둘러 대국민 사과를 했다.
금융당국도 이번에는 정보유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일찌감치 사장 사퇴 등을 언급했다. 금융당국이 정보유출 규모, 금융사의 특징 그리고 여론 등을 의식하면서 대응에 나선 셈이다.
◆ 카드사 뒤에 숨은 외국계 은행
"SC은행과 씨티은행은 운이 좋았다"는 말이 금융권에서 흘러 나올 정도다. 카드사 정보유출 사태로 인해 두 은행의 잘못은 상대적으로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사자들까지 숨 죽이고 있어선 안 된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카드사의 경우 사건이 터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재오 국민카드 사장, 박상훈 롯데카드 사장, 손경익 농협카드 분사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의 경영진들도 사의를 표명하면서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두 외국계 은행의 경우 행장이 직접 나서서 어떤 공식적인 사과나 대책을 내놓지도 않았다. IT업무를 총괄하는 김수현 SC은행 부행장만이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을 뿐이다.
다섯 차례 행장직을 연임 중인 하영구 씨티은행장이 이번 사건으로 강한 징계를 받을 것이란 추측만 나오고 있다. 리차드 힐 SC은행장은 실적 부진 등의 이유로 임기를 2년 남겨두고 교체될 예정이다.
◆ 카드사 신속 징계…외국계는?
금융당국마저 '카드사 때리기'만 하고 있다. 잘못이 큰만큼 처벌도 그에 합당하게 받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너무 신속하게 징계가 내려지다 보니 그에 따른 문제들도 발생하고 있다.
금융노조는 "금융위원회가 금융감독원의 검사가 끝나기도 전에 영업정지를 언급한 것은 졸속행정"이라고 비판했다. 금감원이 검찰로부터 수사기록과 유출 정보파일을 입수한 날은 지난달 10일이었다.
그리고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14일 영업정지를 언급했다. 또 이달 7일까지 금융당국의 검사가 진행되지만 이미 3일에 영업정지를 통보했다. 너무 신속히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제재를 내리자 텔레마케터, 카드모집인 등 비정규직들은 생계를 위협 받게 됐다.
반면 SC은행과 씨티은행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이 없자 '외국계 금융사 봐주기'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외국계 금융사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고, 징계 수위를 두고 국내 금융사와의 형평성 논란도 불거질 전망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SC은행과 씨티은행의 정보유출 사건이 먼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은 만만한 3개 카드사에 대해서만 한 달도 채 안 돼 징계를 내리면서 여론을 무마시키려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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