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상희 기자 =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재정위기 뇌관으로 불리는 유럽 5개국 피그스(PIIGS) 중 하나인 이탈리아로 차이나머니가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저가 매수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산업 특히 전력과 통신, 사치품 산업으로 공격적인 ‘투자러시’를 이어가고 있는 중국 자본은 이탈리아에서 핵심 해외 투자자로 떠오르고 있다.
8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해 중국의 이탈리아에 대한 투자 및 인수합병(M&A) 계약이 크게 늘면서 이탈리아가 적지 않은 경제이익을 얻고 있다면서 이 같이 보도했다.
FT는 이러한 현상을 미국이 2차대전 후 유럽 16개국에 차관을 제공한 마셜플랜에 빗대 ‘제2의 마셜플랜’으로까지 표현했다.
미국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은 올해 들어 지금까지 중국이 이탈리아에 투자한 금액만 35억 유로(약 4조70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투자자본은 특히, 에너지와 통신 등 기간산업과 사치품 분야로 몰리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 국영 전력회사인 국가전력망공사는 지난 7월 21억 유로를 투자해 이탈리아의 국영 에너지 수송망 기업인 CDP Reti의 지분 35%를 매수했다. 또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이탈리아의 최대 석유기업 에니(Eni)의 지분 2.102%, 이탈리아 전력청 에넬(Enel) 지분 2.071%를 인수하기 위해 총 20억 유로를 투자했다.
중국 통신장비 제조업체 화웨이는 2008년에 이탈리아 밀라노 외곽에 건립한 연구개발(R&D) 센터 규모를 2017년까지 2배로 확대하고, 고용 인력을 1700명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화웨이는 지금까지 이탈리아를 포함한 유럽 지역에 5억 유로(약 6700억 원)를 투자했다.
기술적·국가안보적 피해를 우려한 미국의 까다로운 법규에 투자길이 막힌 화웨이는 유럽으로 투자의 방향을 전환했고 현재 유럽 해외투자의 블루칩으로 떠오르게 됐다.
마케팅과 전략담당 윌리엄 쉬 화웨이 이사는 "마테오 렌치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 정부는 외국기업에 '개방적이고 협조적'"이라면서 "외국 기업의 투자환경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마르코 폴로가 600년 전 유럽과 중국을 잇는 다리를 건설하기 위해 누볐던 실크로드는 현재 통신이라는 매개체가 연결해주고 있다"면서 "현재 우리는 서양과 동양을 연결하는 실리콘 로드를 건설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은 2010~2012년 유럽의 재정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당시부터 금융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럽기업 사냥 본격화에 나섰다.
2012년 말 기준으로 모두 195개에 달하는 이탈리아의 중·소규모 기업들이 중국이나 홍콩 투자자들에게 인수됐다. 이들 기업의 총 직원수는 1만 명에 달하며 총 수익은 60억 유로에 달한다.
대표적으로 2009년 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졌던 이탈리아 사치품의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는 명품 요트 생산업체 페레티(Ferretti)가 중국의 기업에 인수됐다.
중국의 불도저 생산업체인 산둥중공업은 2012년 1억7800만 유로에 페레티 지분 75%를 사들였다.
과거 15년간 중국은 시장과 노동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찾기 시작했고, 2010년 찾아온 유럽 재정위기는 유럽의 세계 유명 브랜드와 핵심 인프라 산업의 지분을 저가에 매수할 수 있는 기회를 중국에 제공했다.
이는 중국의 역외투자모델 전환의 불씨를 당겼고, 중국 해외투자의 방향이 개발도상국의 천연자원을 확보하는 것에서 선진국의 기술과 브랜드를 확보하는 것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국 기업의 이 같은 투자러시 행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탈리아 싱크탱크인 폴리시 소나의 프란체스코 갈리에티 창업자는 "중국이 유럽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갉아먹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유럽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탈리아 경제 개발 부시장 카를로 칼렌더는 중국인들을 유럽 전체로 퍼지고 있는 경제위기에도 개의치 않는 ‘진지한 투자자들’이라 칭하며 "우리는 경제위기의 해결책을 이탈리아 외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중국인들의 이탈리아 투자에 대한 긍정적 시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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