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중국의 차오스(喬石) 전 전국인민대표대회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14일 베이징(北京)에서 9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차오스 동지가 14일 오전 7시8분께 베이징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이날 보도했다. 부고 소식은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인대 상무위원회, 국무원,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의 공동 명의로 발표됐다.
1924년 12월 상하이(上海)에서 출생한 고인은 1987년부터 10년간 최고지도부의 일원인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냈고 1993년부터 1998년까지 국회의장 격인 권력 서열 3위의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최고실력자'이던 덩샤오핑(鄧小平) 시대 말기인 1990년대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 리펑(李鵬) 전 총리와 함께 3두마차 체제를 형성했다.
고인은 1940년에 공산당에 입당한 뒤 젊은 시절 상하이에서 지하당 학생운동에 주력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고인은 1960년대부터 베이징에 입성, 정당간 교류를 담당하는 대외연락부 등에서 주로 일해 왔다. 고인은 문화대혁명 당시 구금되고 2차례에 걸쳐 하방되는 경험도 했다. 고인은 문혁이 끝난 뒤 1980년대 이후 대외연락부 부장, 중앙판공청 주임, 중앙조직부 부장, 중앙정법위원회 서기, 기율검사위원회 서기 등 공산당 중앙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신화통신은 고인이 인사제도, 민주법제, 사회치안 강화, '종엄치당'(從嚴治黨·엄격한 당관리)과 '당풍염정'(黨風廉政·당의 기풍과 청렴한 정치) 등의 측면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이는 고인을 시진핑(習近平) 지도부가 추진 중인 현재의 각종 개혁 조치에 초석을 제공한 인물로 평가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고인은 덩샤오핑의 1992년 남순강화(南巡講話) 이후 이를 적극 지지하고 개혁개방 사상을 전파하는데 공을 들였고 전인대 위원장으로서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뒷받침하는 각종 경제법안 마련에도 매진했다.
공산당 내 중도 온건파로 분류되는 고인은 전인대 상무위원장 재임기간인 1995년 황낙주 당시 국회의장의 초청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한 바 있다. 고인은 1998년을 끝으로 현직에서는 은퇴했지만 원로로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 사태 때 그의 축출에 역할을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중국 당국은 지난 2012년 고인의 연설문과 보고서, 저술 등을 모은 '차오스, 민주와 법제를 말하다'는 제목의 책을 발간한 바 있다.
신화통신은 고인을 "중국 공산당의 우수당원, 충성스러운 공산주의 전사, 걸출한 무산계급 혁명가·정치가,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로 규정하면서 "당과 인민에게 무한한 충성을 하고 혁명과 건설, 개혁개방을 위해 일생을 바친 그를 잃은 것은 당과 국가의 큰 손실"이라고 고인을 애도했다. 부인은 젊은 시절 함께 항일운동을 했던 위원(郁文) 전 국제교류협회 부회장으로 2013년 1월 먼저 세상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2남 2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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