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국내에서 발행할 수 있는 주식의 종류에 제한이 있어 기업이 주식 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므로, 선진국과 같이 다양한 종류의 주식 발행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2000년 이후 기업공개와 유상증자를 통해 기업에 유입된 자금은 배당, 자사주 매입을 위해 지출된 금액보다 더 적었다. 지난해 유가증권 상장기업들이 기업공개(IPO)와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6조6000억원인 반면,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지출한 금액은 18조6000억원이었다. 증시에서 조달한 자금보다 증시로 빠져나간 자금이 3배나 많다.
이에 대해 전경련은 우리 주식시장이 기업의 자금조달 기능보다 기업의 자금을 빨아들이는‘블랙홀’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 보아도 우리 주식시장의 자금조달기능이 약하다는 것이 나타났다. 최근 5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액을 비교해보면 한국의 자금조달액은 홍콩의 35분의 1 수준으로, 이는 말레이시아에도 뒤지는 수치다.
주식을 통한 자본조달기능 부진은 상장추세에서도 알 수 있다. 1997년부터 4개년을 제외하고 유가증권시장의 상장폐지기업 수가 신규 상장기업 수를 매년 앞서고 있다. 또한 2014년에는 유가증권 상장요건을 갖춘 기업 600개 중 1.17%인 7개사만이 실제 상장했다.
신석훈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기업들이 주식시장을 외면하고 있는 것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을 개방하면서 투자자보호는 강조한 반면 경영권 안정을 위한 제도마련은 소홀히 해 상장에 따른 기업부담이 증가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며 “안정된 경영권을 유지하며 투자자들의 다양한 선호를 충족시켜 원활한 자금조달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내용의 배당 및 의결권으로 구성된 주식 발행이 폭넓게 허용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이사회 승인 또는 정관변경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주식을 자유롭게 설계해 발행할 수 있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법에서 규정된 종류의 주식만을 발행할 수 있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같이 법에서 규정된 주식 발행만 허용되나 우리나라보다 훨씬 다양한 주식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주식 투자자들은 각자 다양한 니즈를 가지고 있다. 단기적으로 높은 배당을 기대하는 투자자가 있는가 하면 장기적으로 기업의 안정을 추구해 주가 상승을 기대하는 투자자도 있다.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주식이 있으면 좀 더 많은 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
법무부가 과거 2006년, 2008년, 2009년 3개년에 걸쳐 거부권부주식, 임원임면권부주식, 차등의결권주식, 신주인수선택권 등을 도입하려 했으나 경영권 방어수단 남용을 우려한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도입이 결국 좌절됐다. 그러나 위 주식들은 안정된 경영권을 유지하면서도 원활한 자본조달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제도화된 것으로 실제 선진국에서는 기업가치를 훼손시키는 적대적 인수·합병(M&A) 공격을 받는 때를 제외하고는 일상적인 자본조달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송원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주식시장 침체 등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업들이 상장과 자금조달을 원활히 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며 “주식시장 활성화가 투자와 고용을 증가시켜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종류주식 도입을 위한 상법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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