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아이클릭아트 제공]
아주경제 최서윤 기자 = 생활 구석구석엔 과학 원리가 숨어있다.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변기도 마찬가지다. 변기에는 항상 일정량의 물이 채워져 있고, 손잡이를 눌러 물을 쏟으면 이미 차 있던 물이 저절로 내려간다. 하지만 바가지로 천천히 물을 부으면 변기 물은 일정 높이 이상 차오르지 않는다. 여기에 바로 과학 원리가 있다.
변기 안에는 물이 하수도로 빠지는 통로인 배수관이 있다. 이 배수관은 거꾸로 된 ‘U'자 모양이다. 이 배수관을 통해 물은 위로 한 번 올라갔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이 관을 ’사이펀(siphon)‘이라고 한다. '빨아들이는 관'이라는 뜻이다.
사이펀은 물의 높이에 따른 압력 차이로 작동한다. 변기에 물을 한꺼번에 부으면 좁은 ‘U’자 형 관으로 물이 몰리면서 압력이 강해진다. 공기 압력(대기압)과 물 분자의 인력에 의해 물이 이 관의 꼭대기까지 밀어 올려졌다가 중력 때문에 다시 낮은 쪽으로 떨어지면서 하수도로 내려간다. 물은 원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사이펀의 원리를 이용하면 높은 곳의 물이 더 높은 곳을 지나 낮은 곳으로 내려오게 된다.
지난 10월 한국을 찾은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국립과천과학관 방문 기념으로 받은 술잔 ‘계영배’도 사이펀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계영배는 술이 70% 이상 차오르면 새어나가도록 만든 잔이다. 계영배 안쪽에는 둥근 기둥이 있다. 기둥 안에 바로 U자형 관인 사이펀이 숨어 있다. 술의 높이가 사이펀 정점 높이를 넘어서면 잔 밖으로 흘러내리는데, 이는 잔을 채운 수압이 기둥 안의 대기압보다 커져 잔 밑바닥과 연결된 사이펀을 통해 술이 빨려 올라가기 때문이다. 사이펀 정점까지 올라간 술은 중력에 의해 다시 아래로 떨어지고 결국 술은 잔 밑에 뚫린 구멍으로 빠져나간다.
사이펀 원리를 이용한 커피 추출기도 있다. 물이 담긴 동그란 플라스크에 열을 가하면 물이 수증기로 변해 부피와 압력이 커진다. 가열된 물이 사이펀으로 빨려 올라가고 원두가 담긴 윗부분 용기를 통과해 걸러진다. 열이 식으면 하단 플라스크 속 공기가 냉각되면서 진공상태가 돼 다시 아래에 있는 플라스크로 떨어진다.
사이펀은 화학물질 등 다루기 어려운 액체를 만지지 않고 옮길 때나 어항의 물을 옮길 때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기름을 옮길 때 쓰는 펌프도 사이펀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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