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밥상 뭘 준비할까" 할아버지들 즐거운 고민… 서울 양천구, 시니어 영양교실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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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3-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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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양천구 목동보건지소 3층에서 진행된 '시니어 영양교실' 참석 어르신들이 각자 자신의 요리를 뽐내고 있다. 사진=양천구 제공]


아주경제 강승훈 기자 = "내장을 뺀 멸치는 냄비에 살짝 볶아서 무와 다시마를 넣고~ 이제 국물이 우러나도록 끓이면 되는 건가요(?). 소고기는 핏물이 빠진 뒤 밑간을 하라는데 도통 뭘 먼저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지난 11일 오전 11시 서울 양천구 목동보건지소 3층이 머리가 하얗게 샌 어르신들로 무척이나 시끄럽다. 특이한 점은 열평 남짓한 공간에 모인 20여 명이 모두 할아버지로 분홍색 앞치마에 흰색 주방모자를 착용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바로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면서 행복한 인생 2막을 준비 중인 '시니어 영양교실' 수강생들이다.

양천구에서 진행 중인 색다른 요리수업의 인기가 높다. 노령화시대를 대비해 주방이 익숙치 않은 남성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식생활 관리에 도움을 주고자 마련했다. 오직 65세를 넘어야 참여할 수 있다. 작년 1기를 거치면서 입소문을 타고 주위 반응이 뜨거워져 강좌 시작 1~2개월 전부터 정원 20명의 사전접수가 이뤄질 만큼 경쟁률은 치열하다.

이날 2기 3회차로 불고기버섯전골과 달래오이무침, 과일물김치 세 가지 요리를 준비 중인 수강생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4~5명이 1개 팀을 꾸려서 여러 재료를 다듬거나 도마 정리 등 어딘가 서툴지만 각자 역할에 충실한다. 한쪽 테이블에서는 서로 본인이 만든 게 맛있다며 자랑하기에 바쁘다.

최고 연장자로 20년 전 공무원을 정년한 뒤 집밥이 그리워서 참여했다는 김종래 할아버지(목동)는 "과거 주방에도 들어가지도 않아 칼질이 서툴지만 열정은 누구보다 뜨겁다"며 "서로에게 친구가 되는 시간을 보내면서 요즘 그 어느때보다 생활이 즐겁다"고 밝게 웃었다.

참가 어르신들의 사연도 다채롭다. 세끼 밥이나 축내는 '삼식이'라 불리기 싫어서, 평생을 같이 산 할머니에게 한끼 밥상을 선물하고 싶어, 먼저 떠난 아내의 허전함을 일부라도 채우려고 등등. 이제는 '내가 집밥 노(老)선생'이라며 당당하게 실력을 내세운다.

정복환 할아버지(신정동)는 "아내가 간혹 국내외에 여행을 갈 때면 음식을 못해 자주 당황스러웠다"면서 "이제 끼니 걱정은 없고 나중에 할머니에게 멋진 한상 차림으로 깜짝이벤트를 할 생각이다. 절대 가족에게는 비밀"이라고 귀뜸했다.

올해 영양교실은 지난 1기보다 한층 내용이 풍성해졌다. 일정은 두 배가 늘어났고 메뉴는 재철 재료를 활용한 것부터 일품손님상까지 다양하다. 아울러 먹을거리를 바르게 알고 골고루 챙길 수 있도록 건강식단 교육도 마련, 긍정적인 노년의 삶을 영위토록 도와준다.

양천구는 2기가 끝나는대로 손주를 키우는 할머니들, 일명 '할마'와 함께 이유식교실을 열 계획이다. 더불어 현 보건지소 테라스 내 상자텃밭에서 키우는 작물을 갖고 요리경연대회 개최도 구상 중이다.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고령화,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나이를 먹고 홀로 끼니를 해결해야 할 경우도 적지 않다"며 "건강히 먹고 즐겁게 배울 수 있는 노년은 우리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지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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