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 가로와 세로 19줄, 361점의 반상에서 벌어진 ‘세기의 대결’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이세돌(33) 9단은 15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 특별대국장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5국에서 흑을 쥐고 280수 만에 인공지능(AI) 알파고에 불계패했다.
이 9단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특히 우하귀에서 벌어진 초반 전면전에서 실리를 챙기며 유리한 형세를 이끌었다. 하지만 대국 후반부로 가며 한집 반~두집 반 차이로 승부는 알파고 쪽으로 기울어갔다. 이 9단은 패배를 감지했음에도 아쉬운지 경기를 끝까지 진행했고, 결국 5시간여의 혈투 끝에 돌을 던졌다.
지난 13일 ‘결정적 한 수’였던 백 78수로 제4국을 승리를 이끌었던 이 9단은 이로써 이번 대국에서 총전적 1승4패를 기록했다.
5판3승제로 진행된 ‘세기의 이벤트’의 승자는 제3국까지 내리 3연승을 따낸 알파고로 이미 지난 12일 결정났다. 우승상금 100만달러(약 12억1000만원)는 유니세프 자선금과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교육에 쓰이고, 바둑 관련 자선단체에도 기부된다. 이 9단은 승패에 상관없이 15만달러(약 1억8000만원)의 대전료를 받았다.
알파고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두뇌를 능가할 정도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만천하에 ‘인공지능 시대’의 본격 도래를 알렸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대표가 지난 9일 알파고의 제1국 승리 소식이 전해진 뒤 “이겼다. 우리는 달에 착륙했다.”고 말한 것 이상으로 인공지능은 이미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애플·페이스북·IBM 등 세계적인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은 빅데이터와 결합한 인공지능을 금융·스포츠·의료·SNS 등의 분야에서 선보이고 있다.
‘기계의 제국’을 꿈꾸는 구글의 무인자동차는 2014년 9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약 68만㎞를 달렸고, 지난달 23일(현지시간)에는 인간의 모습을 닮은 구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미끄러운 눈밭에서도 균형을 잡으며 무거운 상자를 선반에 올려놓는 ‘위엄’을 뽐냈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어두운 미래에 주목한 이들도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컴퓨터 과학자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이 온다’는 저서에서 “인공지능, 로봇공학 등이 발전하면서 2029년엔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필적하거나 추월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며 “2045년에는 기계지능이 인간지능을 완벽하게 뛰어넘는다”고 주장했다.
커즈와일 뿐만이 아니라 올 초 다보스포럼에서는 앞으로 5년내 일자리 700만개가 없어진다는 전망을 내놓았고, 인공지능 전문가 제리 카플란 스탠퍼드대 교수는 “장의사·파티플래너 정도만 남고 직업의 90%가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며 ‘직업 살생부’를 제시하기도 했다.
구글은 인공지능의 다음 대결 종목으로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꼽는다. 정보 계산·처리 부문에서 인간을 넘어선 인공지능이 마우스와 키보드 조작 등 재빠른 물리적 움직임이 필요한 종목에서는 과연 어떤 ‘활약’을 할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어디까지일까, 인간과의 공존은 어느 수준까지 가능할까 등에 대한 궁금함과 두려움이 있지만, 이번 매치를 통해 알파고는 우리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남겼다. ‘인공지능이라는 거울을 통해 인간 본연의 모습을 되돌아 보라. 그리고 변화의 흐름에 얼른 적응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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