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기(技)만 알고 예(藝)를 알지 못하면 조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국가무형문화재 제35호 '조각장'(雕刻匠) 김철주(1933-2015)는 수만 번의 두드림 과정을 거쳐야 할 금속을 평생 이같은 마음가짐으로 대했다. 그의 손끝에서 사리함, 화병, 향로, 함, 쟁반 등 한국 금속공예의 탁월한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탄생한 것은 그래서 새삼스럽지 않다.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서도식)은 오는 5월 11일까지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 2층 전시관 '결'에서 '조각장 김철주와 그의 유산, 일심유정(一心惟正)' 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김철주 선생 작고 1주기를 맞아 한국 금속조각의 명맥을 이어온 유일한 조각장인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아카이브(Archive)전으로 기획됐다.
조각장은 금속의 표면을 두드리거나 깎아 무늬, 그림, 글 등을 새겨 장식하는 장인을 일컫는다. 지난 1970년 김정섭(1899~1988) 옹이 기능보유자로 처음 인정되었고, 이어 그의 아들 김철주 선생이 1989년 지정됐다.
부친 김정섭은 대한제국 당시 서울 광교천변에 몰려 있던 은방도가(銀房都家)의 일인자였으며, 당대 최고의 서화가라 불렸던 시산 이행원, 해강 김규진 등에게 지도받은 조각장이자 뛰어난 서화가이기도 했다. 김철주는 이러한 부친의 예술세계와 작업관을 이어받아 조각장으로서 또 문인으로서의 흔들림 없는 외길을 걸어왔다.
전시는 △1부 '전승(傳承): 한국금속공예의 맥' △2부 '수신(修身)으로서의 조각' △3부 '창신(昌新): 조각의 생명력'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됐다.
1부가 김철주의 작업, 도구, 문양집 등 '복원된 공간'을 통해 그가 부친과 공유한 예술세계를 보여준다면 2부는 입체·평면·종교적 색채를 고루 갖춘 그의 작품세계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본다. 특히 전문가들로부터 "최고의 예술과 재료가 만나 비로소 탄생했다"는 평가를 받는 은제 사리함(1975년작)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그 완성도와 아름다움에 있어 가히 한국 최고라 할 만하다.
3부에서는 서라벌예대, 국민대, 홍익대 등에서 강의하던 '교육자'로서의 김철주를 조망한다. 그는 말년에 전수자 교육에 집중하며 자신의 조각 세계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일에 각별한 정성을 쏟았다. 4명(남경숙, 장희방, 이진숙, 정병일)의 제자들이 선보이는 작품은 김철주의 조각 정신이 어떻게 계승되었는지 보여주며 그의 유산을 통해 한국 금속공예의 새로운 경지가 개척되고 있음을 명징하게 드러내고 있다.
서도식 이사장은 "김철주의 예술적 성취와 그 의의를 살펴보는 일은 부친 김정섭으로부터 이어져온 한국 전통 금속 조각기법의 가치를 돌아보는 것과 같다"며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한국 근현대 공예사에 끼친 영향을 확인하고 동시대적 가치를 묻는 자리로서의 의미를 갖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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