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혼백이 되어서라도 기꺼이 달려와 동국제강의 수호신이 될 것이다.”
지난 98년 부산제강소를 폐쇄하고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포항을 선택한, 고 송원(松園) 장상태 동국제강 회장이 포항제강소에 세운 ‘제2 창업기념비’를 위해 직접 작성한 ‘동국제강이여 영원하라’라는 제목의 비문 가운데 한 대목이다.
아버지 대원(大圓) 장경호 창업자가 부산 용호동 공장 대역사를 통해 동국제강을 키워냈다면, 송원은 포항제강소를 통해 두 번째 도약을 이뤄냈다.
“앞으로 조선산업 등이 성장할 텐데 이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며 송원은 포항에 대규모 후판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결정했다.
포항 1후판 공장과 2후판 공장은 그래서 건설됐다. 당시 내부의 반대는 심했다. 부산에 있는 모든 생산 설비를 옮겨가며 거기에 새로운 공장까지 건설하려면 당시 비용으로 최소 1조원 이상이 소요되는 일이었고 역시 앞으로의 수요가 이를 뒷받침해줄 것이냐에 대한 회의 때문이다.
하지만 송원은 “지금 우리가 짓고 있는 새 공장에 우리 동국제강의 모든 미래가 걸려 있는 기라. 그래서 내도 이 공장 짓는 일에 비장한 각오로 임하고 있는 기고. 공장 짓는 일이라면, 공장 짓고 설비하다가 돈이 모자라면 마누라 반지라도 팔아다가 집어넣을 기고. 하모 단 돈 100만 원이라도 그리 할기다”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심지어 목숨이라도 바치겠다고 단언했다.
송원은 포항제강소 완공을 보지 못한 채 2000년 4월 4일 타계했다. 하지만 송원의 예션대로 2000년 이후 한국의 조선산업은 급성장했고, 후판은 날개돋친 듯이 팔려 동국제강은 지난 94년 매출 9000억 원 수준에서 2008년 5조6000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부친의 뜻을 이어받은 장남 장세주 회장과 임직원들이 선대의 염원을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각오로 뛴 결과이며, 특히 후판 부문의 성장이 큰 몫을 한 것은 당연하다.
4일로 송원이 별세한지 16주기를 맞는다. 독실한 불교 집안으로 전통에 따라 가족들이 모여 기일날 밤인 3일 발원문을 하고 추모하는 동국제강 오너 일가는, 그동안 장세주 회장이 선친의 기일에 맞춰 매년 제사를 주재하고 발원해왔다.
하지만 올해 제사에 장세주 회장은 처음으로 제사상을 차리지 못했다. 법정 구속된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그래서 올해 송원 제사는 그 어느 때보다 침울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동국제강은 선친의 뜻을 이어 자신이 직접 추진해온 브라질 CSP 용광로 일관 제철소의 화입식(고로에 쇳물을 끓이는 불을 넣는 의식)을 앞두고 있다. 이에 송원은 물론 장세주 회장의 공백이 어느 때보다 크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송원의 뜻을 이어받아 장세주 회장, 장세욱 부회장 등이 동국제강을 훌륭히 이끌어왔다”면서 “브라질 제철소의 성공적인 가동의 시작을 장세주 회장이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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