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둑을 쌓은 강’(Money-Bank River)을 아시나요?
“안다는 것. 아름답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산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어다!”
“진선미가 아닌, ‘전선미’(錢善美)의 나라, 중국!”
“역시 최상의 독서는 저술이다! 책을 쓰도록 내게 생명을 준 신(神)과 그 생명을 보람차게 한 책들에게 감사드린다!”
이는 필자가 이달 초 펴낸 '중국의 슈퍼리치'를 쓰면서 마음으로 외쳤던 앎과 삶의 느낌표들이다. 책 이름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처럼 몇 가지 작지만 뒤늦은 깨달음의 기쁨에 환호했다.
신비체험이라고나 할까. 특히 알리바바 총재 마윈(馬雲) 편을 쓸 때는 시신경 세포가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내 눈동자 5㎜ 앞쯤에는 영화 '007카지노 로열'과 '대부'를 2본 동시상영으로 펼쳐내는 영사기가 지르르 지르르 돌아가는 듯한 느낌으로 전율했다.
1990년대 중반 상하이총영사관 경제담당 영사 재직시절, 필자는 늘 고국의 맑고 푸른 물줄기를 그리워했다. 짬만 나면 남서쪽으로 차를 몰아 저장(浙江)의 중심도시 항저우(杭州)와 첸탕(錢塘)강을 찾았다. 주말이나 연휴에는 첸탕강의 상류유역인, 푸춘(富春)강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중국에도 이처럼 깨끗한 물이 흐르는 강이 있다니, 반갑고 고마웠다.
한편으로는 상류의 ‘가멸찬 봄’이란 뜻의 푸춘강(Rich-Spring River)이나, 하류의 ‘돈으로 둑을 쌓은 강’의 첸탕강(Money-Bank River)처럼, 이토록 풍요로운 자본주의적 이름을 단 강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며 신기해했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의 부자들을 제일 많이 배출해 온 저장성 첸탕강 항저우 유역 강둑을 거닐며 필자는 언제 기회가 닿으면 ‘저장성 지명과 저장 기업인의 상관관계’를 주제로 소논문을 써도 좋겠다는, 생각을 품기도 했다. 알리바바 총재 마윈과 완샹(萬向)그룹 총수 루관추(魯冠球, 1945~)를 비롯하여 중국 100대 민영기업가 중 18명이 모두 돈으로 둑을 쌓은 첸탕강이 흐르는 저장성 출신이다.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중국의 성은 산둥(山東)이지만, 가장 닮은 성은 저장성이다. 약 10만 ㎢의 면적과 4500만명의 인구, 산악과 평야의 7대 3의 구성비, 바다에 2000여 개의 섬이 있는 것이 그렇다. 광둥(廣東)성과 함께 중국의 부자 성(省) 순위 1위를 다투는 저장성은 시진핑(習近平, 1953~ )국가주석이 2001~2007년 7년간 성장, 당서기를 역임하여 눈부신 업적을 쌓은 권력 근거지이기도 하다.
◆‘전선미’(錢善美)가 빛나는 시진핑 주석의 권력근거지
저장성이 중국의 손꼽히는 부자 성이 된 데에는 뭐니 뭐니 해도 자타가 공인하는 중국상인 서열 1위인 저장상인 덕분이다. 창조와 해방, 개혁과 개방, 실사구시(實事求是) 등의 상업정신을 가진 저장상인들은 두뇌가 명석하고 행동이 민첩하며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도 겸비한 사람들로, 그야말로 경영에 능수능란하다.
눈썰미가 좋아 돈 될 만한 장삿거리를 잘 찾아내고, 일단 기회를 잡으면 기막힌 상술을 구사하는 것으로 중국 전역에 정평이 나 있다. 지금도 저장상인의 고급인맥, 높은 저축률과 풍부한 자금원동력은 저장성 경제의 동력이 되고 있다.
'천상에는 천당, 지상에는 소항(蘇杭 ; 쑤저우와 항저우)'이라는 말이 잇듯, 예로부터 항저우는 쑤저우와 더불어 지상의 천당으로 불릴 만큼 풍요롭고 아름다운 도시이다.
우리나라에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去龍仁; 살아서는 진천에 머물고 죽어서는 용인에 묻힌다)’이라는 말이 있듯, 중국 사람들은 권문세가가 많은 쑤저우(蘇州)에서 태어나 풍족하고 윤택한 항저우에서 살며 산해진미가 넘치는 광저우(廣州)에서 먹고 최고급 관을 만드는데 쓰이는 목재의 생산지인 류저우(柳州)에서 죽고 싶다며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타령을 하고 있다.
상하이 장기체류 시절 첸탕강과 항저우는 내 마음의 병을 치료해주던 ‘힐링캠프'였다. 하지만 그 곳에 닿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교통문제였다.
상하이-항저우간 고속도로(151㎞, 1998년 12월 29일 개통)는 중국 동부 연해 지방의 대도시간 고속도로 중 가장 늦게 개통됐다.
필자는 항저우에 갈 때마다 엄청 막히는 320국도를 여섯 시간 넘게 자가 운전했는데, 평야지대의 인접한 두 대도시를 잇는 고속도로를 건설하지 않은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하며 짜증을 냈었다. 그보다 훨씬 교통량이 적은 상하이-난징간 고속도로(274㎞, 1996년 11월 28일)은 벌써 개통되었는데 도대체 뭔 일이야? 무슨 곡절이 있을까? 욕설 반 불평 반으로 표출되는 짜증의 쓰나미를 막는 방파제가 되기에는 내 입술의 높이와 두께가 너무 취약했다.
그런데 마윈 편의 아래 대목을 쓰면서 “아하, 그랬었구나, 그때 알았더라면 짜증을 내기는커녕 오히려 호기심천국 호동그란 고양이 눈으로 추이를 지켜보며 즐겼을 터인데” 라며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의 하나가 되었다.
◆‘007카지노 로열’도 저리 가라는 마윈의 첫 미국 여행기
“당신의 인생일대의 전환점은 알리바바를 창설한 1999년인가?”
한 인터뷰에서 기자는 마윈에게 계속 질문을 이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마윈은 기자의 말을 끊으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다. 내 나이 만 31세 시절, 1995년이었다.”
그해 마윈은 혼이 양탄자를 타고 날아가고 넋이 마술 램프의 연기로 흩어질 만한, 엄청난 사건을 겪었다. 1994년 초 항저우 시정부는 미국 측 투자자 J와 상하이-항저우 고속도로 건설합작 투자계약을 체결했으나 투자금 입금 예정일이 1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애가 탄 시정부는 항저우 바닥에서 영어 최고수로 알려진 마윈에게 투자계약서의 번역상에 문제가 있는지 검토해줄 것을 의뢰했다.
마윈이 영문본과 중문본을 면밀히 대조한 결과 번역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한 미국인으로부터 미국 측 투자자 J가 국제사기꾼이라는 제보를 받고 이를 시정부에 보고했다. 시정부는 마윈에게 현지조사임무를 맡겨 그를 J의 주소지인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출장을 보냈다.
네바다 사막 한가운데의 라스베이거스 공항에 마중 나온 J를 본 순간, 마윈은 심장을 달아맨 힘줄이 끊어질 정도로 놀랐다. “이 자는 사기꾼이 아니라 조폭 보스로구나!” 직감했다. 더구나 영화 '대부'의 돈 코르네오네(말론 브란도 역)의 음성을 흉내 낸 듯한 J의 음침한 음색이 마윈의 확신을 더했다. J는 사업일은 내일 천천히 이야기하자며 마윈을 시내의 한 카지노장으로 데려갔다.
미국에 간 것도, 카지노에 간 것도 처음인 마윈은 얼떨결에 25달러를 베팅하여 600달러를 땄다. (계속)
※ 참고서적 : 강효백, 『중국의 슈퍼리치』, 한길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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