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개봉한 영화 ‘인천상륙작전’(감독 이재한)은 전세를 뒤바꿀 인천상륙작전과 그 뒤에서 역사를 바꾸기 위해 모든 것을 내건 이들의 숨겨진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서 이범수는 북한군 인천 방어사령관 림계진 역을 맡았다.
림계진은 인천지역을 장악한 방어사령관으로 철두철미하고 냉철한 판단력, 뛰어난 전략 전술의 소유자로 자신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총구를 겨누는 불같은 성격의 인물이다. 이범수의 ‘역대급’ 악역이라 불리는 림계진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역대급 악역이라고 불리더라. 많은 악역을 맡아왔지만, 그 안에서 유연하게 인물들을 변주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 악역을 하면 할수록 어렵다. 처음 할 때는 처음이니까 마음껏 하면 됐었는데 두 번, 세 번 갈수록 범위가 좁아지더라. 기왕이면 겹치지 않게 해야 하지 않겠나.
- 군인이다 보니 날렵하고 예민하게 접근할 수도 있었지만 ‘신의 한수’ 살수와 겹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이미지가 겹치지 않았으면 해서 능글맞고 기름진 이미지는 어떨까 생각했다. 감독님과의 상의 끝에 살을 찌워야겠다고 생각, 7kg 정도를 불렸다. 영화를 준비하다가 광고를 찍을 일이 있었는데 영상을 보니 너무 뚱뚱해 보이더라. 게으른 배우처럼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살을 빼기 시작했는데 ‘인천상륙작전’ 촬영팀에서는 난리가 난 거다. 도대체 왜 뺐냐며 캐릭터에 맞게 다시 살을 찌워야 한다고 하더라. 그게 또 맞는 이야기 같아서 다시 살을 찌웠다(웃음).
림계진의 전사가 영화에 드러났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반공영화라는 평까지 나올 정도인데 림계진까지 꽉 닫힌 악역으로 그려지니 아쉬웠다
- 저 역시도 그런 고민들이 있었다. 저로서는 제 분량이니까(웃음). 감독님은 너무 설명적이라고 하시더라.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것도 일리가 있더라. 대신 이런 바람을 갖는다. 림계진 때문에 모든 공산주의가 저렇다, 나쁘다는 개념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처음 시나리오 단계의 림계진은 어떤 인물이었나?
- 고뇌하는 사상가였다. 민족을, 인민을 위한 사람이었고 고뇌하는 엘리트로 그려졌었다. 그런데 장학수(이정재 분)라는 인물과 겹치더라. 아쉽다. 고뇌하는 게 좋은데. 있어 보이지 않나(웃음). 아쉽지만 대립하는 악의 인물로서 더욱 세게 그려졌다. 사시 처음엔 한채선과의 멜로 라인이 있었다. 그런 면이 있기에 (채선이) 살아남은 거다.
장학수가 아니라 림계진과의 러브라인이었나?
- 그렇다(웃음). 삭제된 뒤 제 마음은 오죽했겠나. 멜로가 삭제되며 많은 부분이 변했고 또 찍어놓은 장면들도 삭제되었다.
삭제된 장면이 많은 것 같다
- 전체적인 만듦새를 위해 림계진의 몇몇 장면이 삭제됐다. 개인적으로는 아쉽다. 사실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욕심을 냈던 장면이 있는데 탱크와 림계진의 첫 등장이었다. 흙더미 속에서 불사신처럼 나타나는 것이었는데 멋있게 잘 찍은 것 같은데 영화를 보니 없더라(웃음). 친절하게, 정밀하게 표현될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이번 역할을 위해 많은 걸 준비했다고 들었다
- 러시아 말이나 북한 사투리 등 당장 해야 할 게 많았다. 북한 사투리는 시나리오를 보고 정말 잘해내고 싶었다. 북한군 출신인 선생님께 자문해 사투리를 배웠다. 보통 우리에게 익숙한 평안도 사투리 말고 더 투박하고 생소한 낯선 언어를 구사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 지방인 함경도 사투리를 택했다. 러시아 말 같은 경우에는 그냥 달달 외웠다. 장교 클럽에서 장학수에 총을 겨누기 전에 러시아 인터내셔널가라는 노래를 부른다. 애국가처럼 굉장히 긴 노래인데 소련 유학파니까 완벽하게 불러보고 싶었다. 그래서 한 달을 열심히 했다. 그런데 왜 스크린에는 안 나왔지(웃음). 그 노래가 딱 끝난 시점부터 나오더라.
악역을 많이 하는 배우 중에는 역할에 너무 깊게 몰입돼 힘들다는 얘기를 듣곤 했었다. 이범수는 어떤가? 악역의 악함 때문에 심적으로 괴로웠던 적이 있나?
- 전 그런 게 없다. 스타일의 문제인 것 같다. 영웅이나 재벌 2세 역할에 몰입돼 끝나고 후유증이 긴 건 봤어도 못난이 루저 역할에 후유증이 길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다. 아끼는 캐릭터와의 작별의 시간이 길 수는 있을 것 같다. 예전에 학창시절, 선배들이 어떤 역할을 맡을 때 깊게 빠져야 한다고 했다. 물론 저 역시 그랬던 적이 있었고. 하지만 지금 보면 그건 현실적이지 않다. 다양한 역을 해내야 하고, 집에서의 생활도 있으니까.
현실과 영화를 완벽하게 구분하고 지내는 것 같다
- 역할을 맡으며 예민해질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연기적인 부분이다. 그 역할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는 단초는 지니고 있되 일상에서도 젖어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삶이 피폐할 것 같다. 제가 악역을 많이 맡아왔는데 일상에서도 림계진, 살수처럼 산다면 너무 피폐할 것 같다. 일상과 일의 구분 점이 있어야 더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정이 있기에 현실과 배역의 구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 한 번은 제가 드라마에서 죽는 장면이 있었는데 소을이가 엉엉 울었다는 거다. 소을이가 두세 살 때였는데 아내가 아이를 달래느라 고생했다. 아이들에게 영화 속, 드라마 속 저를 설명하며 역할 놀이라고 말해준다. 소을아, 저건 노는 거야. 범인 역할도 하고 경찰 역할도 하는 거야 하고 말해주곤 한다. 그게 가족에게도 제게도 필요한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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