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주진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8일 국회가 추천한 총리를 임명하고, 새로 임명하는 총리에게 내각 통할의 전권을 부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만큼 야당이 이를 수용하게 된다면 꼬일 대로 꼬인 최순실 정국을 푸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대통령은 이날 지명 6일 만에 '김병준 책임총리' 카드를 사실상 접고, 원점에서 국회와 협의해 내각을 구성하겠다는 입장을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전달했다.
이날 박 대통령의 행보는 국회 방문이라는 형식이나 발언 내용 면에서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 등 공식 일정이 아닌 이유로 국회를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박 대통령은 오는 10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어서 늦어도 9일까지 야당과 협의를 마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오는 12일 대규모 촛불집회 전까지 민심을 다독이려면 금주 중에 수습책의 가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12일 집회에 맞춰 거리로 나가 장외투쟁을 벌일 예정이라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이 밝힌 국회 추천 총리 수용은 대통령 2선 후퇴, 김병준 총리 내정자 지명 철회 등 그동안 야권이 제기해온 요구 조건 가운데 박 대통령이 일부를 수용한 것이 된다. 향후 청와대가 '영수회담' 등 관철을 위한 대야 압박에 나설 명분이 생긴 셈이다.
공을 국회로 넘겼는데도 야권이 계속 반대하는 경우 ‘명분 없이 반대하고만 있다’면서 정국 전환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날 박 대통령의 국회 기습 방문도 야권 압박용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야권도 박 대통령의 국회 방문과 국회 추친 총리 수용 입장에 대해 '정국 전환용'이라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애초 청와대는 “야당에도 회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여전히 협조요청을 하고 있고 조율하는 중이며 오늘 (정 의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야당 대표들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정연국 대변인)며 사실상의 ‘영수회담 개최’를 제안했으나 최종 무산됐다.
야당 대표들은 “박 대통령과 정 의장이 면담한다는 것을 오늘 아침에 처음 들은 것”이라며 “청와대에서 야당 대표들과의 회동 운운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반박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야당과 미리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회를 방문한 이유에 대해 “대통령이 (영수회담 개최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변인은 또 김 내정자의 자진사퇴를 유도할 것이냐는 물음에 "김 내정자의 지명 철회가 아니라 국회에서 추천해주기를 요청한 것"이라면서 “국회에서 추천하는 후보가 나오면 그것으로 다 정리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의 새 총리 추천이 지연될 경우 김 내정자의 내정자 자격이 유지되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 그래서 국회에서 빨리 추천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김 내정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박 대통령이 '국회 추천 총리'를 국회에 요청한 데 대해 "내가 사퇴할 이유는 없다. 여·야·청이 합의하면 내 존재는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여야가 총리 후보자를 합의해 추천하지 않는다면 박 대통령이 김병준 총리 카드를 다시 내밀 수밖에 없다는 얘기로도 해석되는 대목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이날 오후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이제 언론과 국민은 지금 야3당이 총리로 누구를 추천할 것이냐 이것으로 갈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탁 던져놓고 가면 '자 봐라, 국회에서 총리를 추천하라고 해도 못하지 않냐' 그것 아니냐. 우린 그 덫에 이미 빠졌다"고 분석했다.
결국 향후 가장 큰 쟁점은 국회 추천 총리에게 얼마나 많은 권한을 보장할 것인지, 박 대통령이 2선 후퇴를 명시적으로 밝힐지 등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2선 후퇴를 두고 "2선 후퇴라는 게 현행법상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면서 "업무 수행과정에서 총리가 실질 권한을 갖느냐의 문제이지 용어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밝혀 야당과 시각차를 보였다.
이 관계자는 또 박 대통령이 외치(外治), 총리가 내치(內治)를 담당하는 모델에 대해서도 "현행법상 최대한 정치적으로 여야 간 협의를 통해 김 내정자에게 책임총리 (권한을) 주겠다는 쪽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개헌도 안 된 상황에서 대통령께서 모든 것에서 물러나 일하는 그런 상황은 없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강조했다.
반면 야당 내에서는 내치는 물론 외치까지 손을 떼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고, 여당 일각에서도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는 물론 탈당까지 요구하고 있어 후속 논의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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